▲ IBK기업은행 선수들/사진=한국배구연맹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이정철(57ㆍIBK기업은행) 감독은 돌아보면 이렇게 힘든 시즌이 있었나 싶다고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후유증을 가장 크게 겪은 구단인데다 시즌 초반 주전 세터 김사니(36ㆍ기업은행)의 부상과 부친상이 겹쳤다. 포스트시즌(PS)에서는 13일간 7경기를 치르는 살인 일정을 감당한 끝에 지난 30일 정규리그 우승팀 흥국생명을 누르고 마침내 통산 3번째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2011년 8월 창단한 기업은행은 최근 다섯 시즌 연속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3번을 우승했다. 명실 공히 신흥 강호의 탄생이다. 기업은행은 단숨에 KGC인삼공사(2005, 2009~2010, 2011~2012시즌), 흥국생명(2005~2006, 2006~2007, 2008~2009시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프로배구 출범 후 최단기간에 ‘V3’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플레이오프(PO)와 챔프전을 거치는 동안에는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들이 보여준 배구는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좀비 배구라고 할 만큼 끈질겼다. 거듭된 역전극에 배구장을 찾은 한 60대 남성 팬은 “내가 이제껏 봐온 배구 중에 이렇게 재미있는 적은 처음”이라고 즐거워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선수들은 죽을 맛이어도 보는 팬들은 정말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웃었다. 기업은행이 써내려간 집념의 좀비 배구는 손에 땀을 쥐는 끈질김으로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여자 배구의 이미지마저 바꿔놓은 것이다.

고난이 있었기에 감동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 컸다. 감회에 젖은 이 감독은 올 시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렇게 돌아봤다. 스타 군단 기업은행은 주축 멤버인 김희진(26ㆍ기업은행), 박정아(24ㆍ기업은행), 남지연(34ㆍ기업은행)이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돼 팀을 떠나있었다. 이 때문에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한데다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종아리가 번갈아 아팠던 김사니는 한동안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친상마저 겪었다. 부친은 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자주 체육관을 찾던 거목과 같은 존재였다.

PS에서는 살인 일정이 거듭되며 너나할 것 없이 링거(수액)를 맞는 투혼을 보여줬다. 주장 김희진은 챔피언결정 2차전을 마친 뒤 탈진해 쓰러졌다. 박정아는 3차전 이후 두통을 호소해 실려 갈 뻔했다. 인삼공사와 벌인 2차전부터 단 한 경기도 방심 못할 접전이 벌어져 피로도를 더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1세트를 내주고도 2세트 중반 이후 거짓말처럼 경기력 살아나며 역전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힘들수록 선수들의 정신력은 더욱 강해졌다. 주장 김희진은 “힘든 만큼 기쁨은 그 이상”이라며 “앞서 우승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의미로 와 닿는다”고 했다. 박정아는 ”중간에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당초 시즌을 통째로 날릴 위기에 처했던 김사니는 우승을 결정짓는 4차전에서 활약했다. 그는 “올 시즌 나는 아웃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을 비운 적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회복이 빨랐고 선수들이 고생하는 걸 보며 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것 같다. 종교가 없는데 플레이오프 때부터 아버지를 많이 찾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감독은 “운이 따라준 것 같다”면서도 “선수들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남보다 많이 했으면 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차출 등) 사정상 지난 시즌에 비해 운동을 많이 줄였다. 그래도 그 전에 했던 운동이 이틀에 한 번씩 벌어지는 경기를 버텨내는 원동력이 됐다”며 스파르타식 강훈련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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