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어느 날’은 아내를 잃고 삶의 희망까지 놓아버린 남자 강수(김남길)가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시각장애인 미소(천우희)의 영혼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과 삶의 변화를 그린다.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날’ 역시 작품에서 흔히 다뤄진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다룬다. 감히 ‘어느 날’을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현대인의 삶의 무게를 어느 정도 덜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철저히 강수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강수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미소를 만나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수 없을 만큼 힘에 부친 삶을 살고 있는 강수는 겉으로는 밝지만, 사실 누구보다 큰 아픔을 지닌 미소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강수에게는 아픈 아내를 잃었다는 죄책감과 슬픔이, 미소에게는 어린시절 엄마(정선경)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두 남녀의 관계를 그리면서 ‘러브라인’이 없다는 점 역시 이색적이다. 그 동안 멜로 장르에서 흔히 남녀의 사랑을 다룬 데 반해 ‘어느 날’은 두 남녀의 아픔과 치유 과정만을 담백하게 그린다. 만약 강수와 미소의 사랑이 전개됐다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흐름이 깨져버렸을 터다.

영화의 주 메시지는 사실상 삶과 죽음이다. 남겨진 사람의 상처와 회복을 그리는데,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어떻게 해야 삶의 무거운 짐을 덜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방법을 제시한다. 짐을 안고 가기보다 오히려 내려놓았을 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강수의 마지막 표정이 말해주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았음에도 신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강점이다. 티격태격한 강수와 미소의 만남부터 작위적 설정의 부재가 대표적인 예다. 묵직한 내용을 가볍게 풀어낸 이윤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김남길과 천우희의 호흡 역시 완벽하다.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연기가 가히 관건이다. 전작 ‘판도라’부터 카리스마를 던지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남길의 감성 연기가 관전 포인트다. 발랄한 미소를 입은 천우희는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영화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 동안 강렬한 캐릭터를 주로 선보인 천우희의 색다른 모습 역시 신선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속 상처, 치유, 회복을 녹여낸 작품이다. 봄날의 잔잔한 감성을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꼭 볼 것을 추천한다. 5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사진='어느 날' 포스터 및 스틸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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