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손현주는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27년 차의 베테랑 배우다. 연기에는 관록이 묻어나지만,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철저히 예의를 지켰다. 소위 ‘베테랑’으로 불리는 다른 배우들처럼 여유를 부리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중한 손현주는 영화 ‘보통사람’에서 보통사람이고 싶었던 가장이자 형사 성진 역으로 인간미가 묻어나는 연기를 펼쳤다.

‘보통사람’은 1980년대 안기부의 실체를 다룬다. 사실 원래 배경은 1970년대였으나 1980년대로 변경했다. 영화를 제작하던 때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인 만큼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난항을 겪은 게 사실이다.

“시대가 1980년대로 바뀌었다고 해도 투자를 잘 받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불과 2~3년 전이니까 그 때만해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될 수 있었어요.”

손현주에게 1980년대는 청춘 시대다. 1970년대보다 1980년대가 덜 경직된 시기였다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제가 84학번이거든요. 그 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군대도 다녀왔죠. 그래서 1980년대를 잘 알고 있어요. 1970년대보다 1980년대에 좀 더 대중이 살아갈 수 있는 정책들이 생겼죠. 물론 1980년대도 경직됐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처음 공부했던 시기기도 하고요.”

‘격동의 시대’로 불리는 1980년대는 군사정권으로 억압 받은 시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때다. 국민의 자유가 억압된 시절이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함을 더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시대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요. 20년 뒤 지금의 모습이 근현대사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보통사람’의 성진이 살고 있는 시대나 지금이나 모두 살만한 세상을 외치니까요.”

영화 속 성진은 승진과는 늘 거리가 먼 강력계 형사다. 그런 성진에게 최연소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성진은 다리가 아픈 아들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결국 큰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제게 그런 선택이 주어진다면 굉장히 고민할 것 같아요. 누군가 그런 거래를 한다면 혼란스러울 테고. 그 상황이 왔을 때 거절할 수 있다고 말을 못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통사람’은 정의라는 걸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드는 영화에요.”

손현주가 연기하는 성진은 짠하기 그지없다. 규남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권력층의 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듯 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연기하기 힘든 게 사실이죠. 이번 영화에서는 주로 많이 맞았어요. 잘못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었죠. 거꾸로 매달리는 신을 촬영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피가 거꾸로 쏠리니까 내려가고 싶은데 자주 내려가면 또 촬영이 지연되잖아요. 도저히 못 견딜 때만 좀 내려달라고 스태프에게 부탁했죠. (웃음)”

성진의 잘못된 선택을 돌리고자 애쓰는 인물이 추 기자(김상호)다. 추 기자는 정의롭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김상호 특유의 따뜻한 정이 묻어난다.

“김상호가 출연한 ‘완득이’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김상호는 A, B, C처럼 연기하지 않아요. 정해진 순서대로 하지 않고, 계산되지 않은 행동들이 툭툭 튀어나오죠. 남자 눈에 빠져들기는 처음이에요(웃음). 다시 한 번 연기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에요.”

손현주는 데뷔 후 한 번도 구설수나 루머에 휩싸인 적이 없는 배우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지 않는 손현주의 신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손현주는 “이걸 약속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죠. 작은 나라에서 SNS가 굉장히 발달돼 있다 보니 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는 애초에 손을 대지 않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도 늘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마’라고 말하죠. 저라고 일탈에 대한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래도 안 되는 곳은 가지 말아야죠. 제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인데 ‘19금 영화 싫다’고 말한 뒤부터 청불 영화에는 출연을 안 하고 있어요. 아이가 클 때까지 안 하려고요.”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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