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을 놓고 치열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산은은 국민연금이 의외로 강경하게 나오면서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정부의 특정기업 지원을 엄격히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에 별다른 움직임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7일 산업은행은 전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방안 수용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밝힌 국민연금을 설득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산은은 오는 17~18일에 열리는 사채권자집회에서 국민연금이 결국 정부의 ‘50% 출자전환, 50% 만기 상환 유예’의 채무조정안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 사진=연합뉴스

산은 관계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국민연금이 이번에는 경제적으로 어느 쪽을 선택할지 명확함에도 과거에 버티면서 추가로 무엇인가를 더 얻어냈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일 수은이 대우조선 자본확충을 위해 인수하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30년 만기) 금리를 연 3%에서 연 1%로 낮추기로 하지 않았냐”며 “추후 배임죄를 피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바로 동의 여부를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민연금이 ‘부정→저항→회피→체념→순응’으로 이어지는 5단계에서 저항 정도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미국 여의사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죽음의 5단계’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에 빗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결국 순응단계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국민연금은 산은으로부터 회사의 재무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제3기관의 실사 결과 등 자료를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삼정KPMG가 작성한 대우조선 실사보고서 요약본은 이미 열람했다. 이 외에 법정관리 시 손실액이 17조6,000억원이라고 판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와 지난해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발표 직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맥킨지는 대우조선에 대해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판단,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2강 체제가 한국 조선업이 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산은 측은 마치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을 지시하듯 뻣뻣한 국민연금 태도를 이해하며 분통을 떠뜨리고 있다.
 
이 와중에 금융위는 WTO규정에 위반될까 전전긍긍하면서 산은 등만 떠미는 모양새다. 지난 2015년 유럽연합(EU)과 일본정부는 산은 등 국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자금지원이 WTO 규정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전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채무 재조정에 실패하면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 돌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정도 수준의 개입에 그치고 있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지난 3일 “국민연금 등 채권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 게 이익인지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압박성 발언을 하긴했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는 양상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국민연금에 청와대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도 금융위와 기재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훈 금융위 기업구조개선과장은 “산은에 맡기고 최대한 안 나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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