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정소민이 40대 중년 아저씨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워낙 동안 이미지가 강해 아저씨 연기를 한다는 게 상상되지 않았다.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살렸다. 30대를 앞두고 있지만 고등학생 교복도 어색하지 않았다. 영화 ‘아빠는 딸’ 속 정소민은 제 옷을 입은 듯 훨훨 날아 다녔다.

영화는 하루 아침에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사생활은 물론 마음까지 엿보게 되는 이야기다. 정소민은 17세 여고생 원도연과 47세 만년 과장 아빠 원상태(윤제문) 1인 2역을 맡았다. “아무리 남자 연기를 해도 보이시한 여자 캐릭터가 될 것 같더라. 원상태는 집에서 딸에게 무시당하는 가장이자 회사에선 만년 과장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얼마나 힘들까. 아저씨들 특유의 지쳐있는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정소민은 윤제문이 출연한 영화 ‘고령화 가족’을 참고했다. 서로 리딩을 바꿔 하며 중년 아저씨 연기를 몸에 익혔다. 윤제문이 앉거나 설 때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윤제문의 대사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으며 노력한 덕분일까. “어느 순간 아저씨 연기가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보디 체인지 소재가 다른 작품에서 많이 사용 돼 걱정도 컸을 터. 관객들에겐 식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정소민은 이를 맛있는 음식에 비유해 설명했다.“이미 아는 맛이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안 먹지 않지 않느냐”는 것이다. “식상하다는 건 그만큼 관객들이 많이 원하는 요소와 맞물린다. 그걸 잘 채워주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초 아버지와 단 둘이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귀띔했다. “‘아빠는 딸’ 역시 부녀가 같이 보기 좋은 영화”라며 영화를 보고 부모님께 한 번 연락만 해도 “감사할 것 같다”고 바랐다. “요즘 워낙 웃을 일이 없지 않냐? 다들 힘든데 잠시나마 웃다가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빠는 딸’은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걸그룹 씨스타 ‘나 혼자’를 비롯해 김광석 ‘기다려줘’, 강산에 ‘삐딱하게’ 등 추억을 상기시키는 노래가 많이 등장한다. 극중 정소민은 밴드부 오디션에서 통기타를 메고 강산에의 ‘삐딱하게’를 걸쭉하게 불렀다. 3개월간 연습한 끝에 탄생한 장면이지만 “많이 아쉬웠다”고 했다. 가수가 아니다 보니 자신이 노래를 한다는 자체가 민망했단다. 그래도 “요즘 취미는 기타다. 처음에는 손이 너무 아팠는데 굳은살이 베기니까 괜찮더라.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고 웃었다.

정소민은 공교롭게도 영화와 드라마 모두 아빠를 소재로 한 작품에 출연했다. KBS2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김영철과 부녀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딸 캐릭터도 정반대고 아버지, 가정환경 자체도 다르다. 김영철 선배는 한없이 따뜻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다. 윤제문 선배는 직장, 집에서 치인 가장이지 않냐. 좀 더 현실에 많은 아버지인 것 같다.”

정소민은 어느덧 데뷔 10년 차다. 2008년 가수 노블레스의 ‘후회는 없어… 날’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올해 29세인 정소민은 고등학생으로 착각할 만큼 동안 외모를 자랑했다. 윤제문은 정소민을 처음 보고 “몇 학년?”이라고 물었다고. 동안 이미지에 대한 걱정은 없을까. “분명히 갈증은 있다. 지금 이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지 않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맞는 캐릭터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래 교복을 입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한 번도 그 시절을 연기하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하니까.”

빨리 30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정소민은 서른에 대한 판타지로 가득 차 있었다. “스무 살보다 서른의 무게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정말 어른이 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자체가 아이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다”고 웃었다.

정소민은 지난해부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아빠는 딸’을 시작으로 ‘마음의 소리’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사전제작으로 찍다 보니 직장인이 된 것 같았단다. 본인이 선택한 건 배우까지라며 “연기 외에 인기 등 따라오는 건 덤 같다. 사랑 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선물 같다고 할까. 소위 잘 된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선택한 걸 충실히 하고 싶다”고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아빠는 딸’을 통해 바라는 것도 딱 하나다. 정소민은 영화 첫 주연을 맡았지만 욕심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보다는 감독 및 스태프들을 생각했다. “김형협 감독의 입봉작이다. ‘아빠는 딸’ 이후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통해 한 명이라도 실직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사진=임민환기자 limm@sporbiz.co.kr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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