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시청자 제보로 4벌타를 부과받은 렉시 톰슨(왼쪽)./사진=LPGA 제공.

[한스경제 박종민] 골프장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장 등과 비교할 때 면적이 훨씬 넓다. 최근 TV 중계 장비가 첨단화되고 수적으로도 많아졌지만, 모든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선수가 공을 홀 컵 가까이 미세하게 옮겨 놓더라도 이를 잡아내기란 여간 힘들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행위를 하다 벌타를 부과 받은 선수가 있다. 바로 렉시 톰슨(미국)이다.

톰슨은 지난 2일(한국시간)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30㎝ 보기 퍼트를 앞두고 집어 들었던 공을 제 자리가 아닌 곳에 내려 놓았다가 이를 지적한 시청자 제보로 경기위원회로부터 뒤늦게 4벌타를 부과 받았다. 톰슨은 3타 차 선두 자리에서 밀려 내려왔고, 결국 연장전에서 유소연(27)에게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TV로 시청하던 제3자에 의해 경기 결과가 완전히 뒤집힌 사례다. 지난 10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도 TV 시청자의 제보로 벌타를 받을 뻔한 사실이 하루 뒤 밝혀졌다. 가르시아가 대회 4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 주변을 정리하다 공이 살짝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고, 이를 담은 2초 분량의 동영상이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마스터스 조직위원회가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열고 "룰 위반은 없었다"고 밝혀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지만, ‘TV 심판’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TV 심판’을 두고 골프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시청자들의 골프 판정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SNS에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셸 위(미국) 역시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이 전화 건다는 곳의 번호는 무엇이냐"라고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이언 카터 골프 전문기자는 “모든 종목의 팬들이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TV를 통해 지켜보지만, 골프처럼 선수들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도 있다.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은 12일 본지와 통화에서 “규정 위반을 한 선수를 TV 시청자의 제보로 잡아내 벌타 등 징계를 내리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는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를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 한다. PGA 투어 등도 그런 차원에서 스코어 오기에 대한 실격 처리를 최근 없앴다. 선수들이 스스로 규정을 위반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정회원이자 2PM 골프스쿨 소속인 최원석 프로 역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골프는 서로의 양심을 믿고 하는 스포츠다. 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매너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기본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 필 미켈슨(미국)은 ‘필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며 “’TV 심판’이니 그런 말들이 나오기 전에 선수 개인이 알아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의견을 내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이도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 프로는 “선수들마다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노코멘트’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마이크 완 LPGA 커미셔너는 이번 논란에 대해 "답답하고 부끄럽다"며 "투어는 지난 67년간 골프 규정을 지켜왔다"고 공정성과 원칙론을 강조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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