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배우 천우희의 행보는 심상치 않다. ‘써니’ 속 본드녀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천우희는 이후 성폭행 피해자부터 미친 여자까지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를 맡아왔다. 물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떤 캐릭터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표현해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최근작 ‘어느 날’(5일 개봉)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작에 비해 조금은 쉬운 캐릭터일까 싶더니 끝내 관객을 울리고 만다. 극중 시각장애인 미소 역을 맡아 1인 2역 연기를 펼치며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어느 날’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의 영혼이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에게만 보이면서 벌어지는 변화를 그린 영화다. 천우희는 병상에 누워있는 미소부터 ‘영혼’ 미소의 일상적인 연기까지 표현했다.

“1인 2역이다 보니 두 번의 연기를 해야 했어요. 촬영 전에는 ‘그렇게 어렵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대역이 있긴 했지만 시선 처리나 제가 했던 연기를 생각하면서 연기해야 하니까 집중력이 필요했죠. 식물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숨 조절이나 눈의 움직임, 경직된 몸까지 다 연기해야 했어요. 그 장면을 찍고 나면 온 몸이 담 걸린 것처럼 힘들더라고요.”

천우희는 병상에 누워있는 미소의 모습이 좀 더 초라하길 바랐다고 했다. 화면에 어떻게 비춰지든 최대한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길 원했다. “좀 더 마르고, 죽음에 가까워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서 누워있는 미소가 점점 변하는 모습이 담기길 바랐죠. 감독님이 오히려 ‘그래도 여배우인데 그만하면 됐다’고 말렸죠. (김)남길 오빠는 안 찍을 때는 좀 자라고 했어요(웃음).”

영화는 천우희와 김남길이 90% 이상의 분량을 차지한다. 두 사람의 투샷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현장에서 호흡이 굉장히 중요했을 터다. “오빠와 케미는 정말 잘 맞았어요. 사실 오빠가 굉장히 수다스러운 성격이라 어색함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죠. 감독님까지 셋이서 영화에 대해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대화를 나눴어요. 첫 촬영 신이 미소와 강수가 드라이브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전부 애드리브였어요. 오빠가 정말 잘 받쳐줬죠. 그때부터 순탄하게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은 떠나야만 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상실감과 슬픔, 고통 등의 감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저는 그런 상황에 대해 공감을 많이 했어요. 3년 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께서 병상에 오래 누워 계셨거든요. 저 뿐 아니라 가족도 같이 경험해서 그 아픔이 어떤 건지 공감해요. 이번에 미소 역을 연기하면서 그런 상황과 감정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만약 강수를 연기했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입장만 이해했을 텐데, 미소를 연기하면서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천우희는 언론시사회 당시 청순하고 가녀린 전형적인 여성적인 캐릭터의 틀을 깨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순한 역할로 출연 제안이 들어오면 고사할 것이냐고 묻자 “그건 아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청순한 캐릭터를 고사하진 않아요.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말할 거예요. 여러 캐릭터의 모습이 겹쳐진 전형화 된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게 싫었던 거예요. 시각장애인이라는 게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작품을 보면 항상 특정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거죠. ‘나도 굳이 이렇게 연기해야 할까?’ 싶었어요. 미소의 표현방식이 좀 더 친근하고 인간미가 있길 바랐죠.”

천우희는 굳이 규모가 큰 상업영화에 욕심내지 않는 배우다. ‘어느 날’과 같은 중저예산 작품이나 다양성 영화에 갈증을 느낀다고 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좋은 시나리오라면 항상 참여하고 싶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규모가 적은 작품을 어떻게 드리냐’는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전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제가 베테랑도, 초보 신인도 아니라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도토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더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하죠.”

최근 천우희는 데뷔 후 처음으로 팬미팅을 열었다. 당초 지난 해 연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한 차례 연기 후 3월에 열렸다. 팬들의 뜨거운 애정에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저도 안 울 줄 알았어요. 사실 팬들이 슬로건을 만든 걸 팬미팅 시작 전에 봤거든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슬로건을 드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원래 여성 팬이 많은데 그 날은 생각보다 남성 팬도 꽤 있었어요. 비율로 따지면 여성 60%, 남성 40%였던 것 같아요.”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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