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여의도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풍수지리’로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됐다. 그것도 바로 옆 건물에서다.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왼쪽)/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은 현재 입주하고 있는 삼성생명 여의도빌딩에서 이달 말부터 미래에셋 본사가 있던 케이타워(K타워)로 이사한다. 같은 여의도지만 SK증권이 본사를 이전하는 것은 지난 1992년 그룹에 편입한 이후 처음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SK증권은 1995년에 본사 건물을 짓고 입주했지만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현재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다.
 
일단 SK증권 측은 “삼성생명과의 장기 임대 계약이 만료됐기 때문”이라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지만 공정거래법에 따라 그룹이 SK증권을 8월까지 매각해야 하는 만큼 미묘한 시기에 본사가 이전하는 셈이 됐다. 최태원 SK그룹회장도 최근 서울 한남동에 마련한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케이타워가 미래에셋이 금융그룹으로 도약한 장소라는 점이다. 박현주 회장은 1997년 강남구 신사동 한 사무실에서 미래에셋(현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한 뒤 미래에셋자산운용 출범이후인 1999년부터 케이타워 자리에 사옥을 만들어 입주했다. 이 자리에서 미래에셋증권 설립과 SK생명(현 미래에셋생명) 인수 등을 마무리했다.
 
미래에셋 원년 멤버로 박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인사는 “박 회장이 첫 사옥을 마련하는 만큼 건물 위치 선정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며 “풍수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임원에 붙여서 사옥 후보가 되는 건물을 함께 돌아보게 하는 등 일일이 체크했다”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서울증권(유진투자증권), 장은증권, 고려증권, 한국투자신탁(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신탁(하나금융투자), 쌍용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 등 여의대로에 위치한 증권사들이 모두 무너졌다. 이에 ‘여의도는 강바람이 심해 웬만큼 기가 세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왔고 박 회장은 고심 끝에 강바람을 타지 않는 안쪽에 자리 잡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풍수지리 때문인지 임차인들이 케이타워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이 성장한 장소로 이전하는 것을 두고 SK그룹이 SK증권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그룹에서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본사 이전을 통해 분위기 쇄신과 성장을 노리고 지분은 계열사로 넘겨 공정거래법을 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현주 회장은 ‘인사이트펀드 사태’를 호되게 겪은 후 2010년부터 센터원빌딩 공사에 들어갔다. 여의도를 떠나 2011년 센터원으로 이전해 대우증권(미래에셋대우)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져 새로운 풍수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센터원이 과거 주전소(鑄錢所·조선시대 동전을 주조하던 정부관청) 자리였다는 소리에 박 회장은 단박에 이전을 결정했다.

▲ 서울 중구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전경

한편, 케이타워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국토정보공사(옛 대한지적공사) 서울지역본부 부지에는 2020년까지 ‘KB금융타운’이 건설된다. 이 부지에는 지하 5층∼지상 25층, 연면적 5만6,000㎡ 규모의 KB국민은행의 본점 통합사옥을 들어설 예정이어서 지하 5층 지상 15층, 연면적 4만6,500㎡의 케이타워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풍수지리보다는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국토정보공사 부지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KB지주 관계자는 “명동본점, 여의도본점, 세우회빌딩 본점 등 3곳에 나눠져 있는 국민은행 본점을 한 건물에 넣기는 어렵지만 가까운 곳에 모아놔 회의 등을 할 때 비효율성을 개선하려는 게 윤 회장의 의지”라고 말했다.
 
윤 회장과 박 회장은 각각 전라남도 나주시와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고등학교는 윤 행장이 광주상고(광주 동성고), 박 회장이 광주일고(광주제일고)를 졸업해 두 사람 다 광주에서 다녔다. 이들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한 차례 경쟁을 벌였고 이제는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으로 초대형 IB 분야에서 맞서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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