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 보험설계사 A씨는 업무 외의 일로 지점장과 가벼운 말다툼을 겪었다. 지점장과의 다툼이 찝찝했지만, 평소 실적이 좋았던 A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얼마 뒤 지점장은 A씨가 ‘고아계약’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촉을 통보했다.

보험사들의 보험설계사 위촉과 해촉에 안전장치가 없어 보험설계사들이 고용 절벽에 몰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저실적자의 재교육보다 그만두게 한 뒤 신규 설계사를 새로 뽑고, 업무 외적인 갈등에도 해촉 카드를 꺼내는 등 보험설계사들의 속앓이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보험사들이 고아계약을 관리하려고 도입한 데이터베이스(DB) 시스템에서도 우량 계약과 부실 계약을 기준 없이 밀어주는 꼼수를 보였다. 해촉 규정을 현재 업무환경에 맞춰 강화하고, 고아계약 분배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회사 21곳의 13개월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이 평균 40.2%로 열 명중 네 명에 불과했다. 보험사들이 설계사들의 인사권을 규정 없이 휘두르면서 정착률이 낮아진다는 지적이 인다./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회사 21곳의 13개월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이 평균 40.2%로 열 명중 네 명에 불과했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전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실적이 좋은데 강제로 해촉됐다는 사례도 제보됐다”며 “보험사들이 이현령비현령처럼 해촉할 때는 계약직 노동자로 취급하고, 관리할 때는 자영업자처럼 방치한다”고 말했다.

한 보험사의 설계사는 “해촉의 기준도 안전장치도 없어 지점장과 다퉜다는 이유로 떠나는 설계사도 있다”며 “‘싸워서 자른다’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감정이 상한 뒤 실적 쌓기를 방해하거나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등을 떠민다”고 설명했다.

보험설계사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고용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보험사의 상품을 전담으로 판매하므로 일종의 ‘임명’인 ‘위촉’ 방식을 쓴다. 해고나 마찬가지인 해촉 권한도 보험사가 전적으로 가진다.

설계사를 무분별하게 뽑아 초기 계약 건수를 올리고, 방치하다가 단기에 한꺼번에 해고하는 보험사의 관행도 문제로 꼽혔다. 보험사들이 위촉 설계사에게 주는 계약 체결 수수료를 쪼개어 지급하다가 수수료를 다 지급하기 전에 설계사를 해촉해 부당수익을 챙긴다는 주장이다. 보험업계에는 관행적으로 ‘해촉된 설계사에게는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기정사실화 돼 있다.

오 대표는 “신규 설계사들의 초기 계약 수당을 일부 지급하지 않고 해촉하는 것은 명백한 부정수익”이라며 “많이 뽑아 초기 계약을 당기고 우수수 해고하는 관행이 남아있다면 설계사 전문성도 꾸준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사가 마구잡이로 해촉되는 사이 ‘고아계약’이나 단기계약 해지율도 급증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 1~3분기 생보사 1년 계약 유지율은 82.8%로 집계됐다”며 “이 기간 기간 보험가입자 중 17.2%는 1년 안에 보험을 해약한 셈”이라고 전했다.

고아계약을 관리하려고 내놓은 보험사 DB 시스템 운영상 꼼수가 지적됐다. 보험사의 지점장들이 설계사에게 고아계약을 분배하면서 친분이 있는 설계사에게 우량 고객을 밀어주고, 사이가 좋지 않은 설계사에게는 부실 계약을 떠넘기는 등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주장이다.

무분별한 해촉을 없애려면 위촉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7년 제정된 표준 위촉계약서 모범규준은 10년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설계사 정착률이 높았던 보험사들은 공통적으로 위촉 과정과 신입 교육을 강화했다. 설계사 정착률이 높으면 그만큼 보험사가 해촉한 설계사가 적다는 의미다.

한편, 현대해상은 열 명중 여섯 명의 설계사가 1년 이상 잔류해 손보계와 생보계를 통틀어 설계사 정착률이 가장 높았다. 2015년에는 57%, 지난해에는 54.6%로 2년 연속 1위였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신규 설계사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대면 상담”이라며 “실적이 좋은 선배 설계사와 신규 설계사를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맺어 고객 면담에 동행하는 등 신규 교육을 촘촘히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3개월 무실적자가 되기 전에 면담을 하는 등으로 실적 제고를 요구한다"고 해명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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