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 트로피에 키스하는 김민선/사진=KLPGA

[김해=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63승(메이저 대회 9승)에 빛나는 고(故) 벤 호건이 생전 남긴 “드라이버는 쇼이고 퍼터는 돈(스코어)”이라는 명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호건은 실제 성적에 미치는 퍼터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장타가 지닌 매력도 담고 있다. 즉 스타성이다.

미국으로 떠난 박성현(24ㆍKEB하나은행)이 그랬다. ‘포스트 박성현’을 찾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이제 박성현과 비거리 ‘톱2’를 다투던 김민선5(22ㆍCJ오쇼핑)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런 조짐은 지난 23일 끝난 KLPGA 투어 넥센ㆍ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017 대회 현장에서 확인됐다. 김민선이 등장하자 갤러리들은 웅성거렸다. 라운드 내내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몰고 다닐 만큼 인지도를 올리는 중이다. 밝고 외향적인 성격의 김민선은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인기가 별로 없다”고 겸손하면서도 “아무래도 첫 우승 지역인 김해 쪽에 오면 성적이 괜찮아서 격하게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고 웃었다.

175cm의 장신인 김민선은 남들과 차별화되는 장타 비결에 대해 “헤드 스피드가 빠른 편”이라며 “비거리를 내기 위해서는 칠 때 체중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체력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린 동계 훈련 효과도 무시 못 한다. 그는 “웨이트 훈련을 많이 해서 근육이 많이 늘고 하체가 조금 튼튼해진 것 같다. 바지를 한 치수 크게 입을 정도로 몸무게도 늘었다. 티샷 방향성이 안정적이 된 것 같다. 똑같이 치는 데 더 멀리 나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건의 말처럼 장타만으로는 원하는 성적을 쥐기는 힘들다. 김민선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장타왕이면 좋긴 하겠지만 지금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퍼팅이나 쇼트게임을 더 잘해야 한다. 대회를 하다 보면 샷이 흔들려도 퍼팅이 될 때 확실히 스코어가 잘 나온다. 샷은 1~2m 거리에 붙여도 안 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심리적으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 넥센 대회 우승을 가능하게 했던 인내와 침착성이다. 이는 최근에 생긴 취미와 무관하지 않다. 바로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낚시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김민선은 “태국에 놀러 갔는데 우연히 요트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하게 됐다. 그 뒤 2년 동안 틈만 나면 낚시를 한다”고 즐거워했다.

김민선이 골프를 시작한 계기는 아버지의 영향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 손에 이끌려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그렇게 한동안은 학원 다니듯이 했다. 본인 스스로는 “너무 정적인 운동이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골프도 학교 성적도 어중간했다. 고민 끝에 부모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아예 골프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켜 본격적인 골프 선수로 키워보자고 마음먹었다.

시작은 늦은 편이었지만 김민선은 그래도 꾸준히 쳐왔던 감이 있어서 금방 또래들을 따라갔고 잘하는 선수 축에 들었다. 다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가족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아버지는 회원권 분양 같은 영업 일로 골프 쪽과 인연을 맺었는데 직업의 특성상 벌이가 들쭉날쭉해 뒷바라지가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민선은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오빠랑 두 명을 시키다 보니까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게 10년 정도 되니까 힘들어졌는데 다행히 내가 프로로 턴하면서 좀 보탬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김민선은 황금 세대로 불리는 1995년생 라인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그는 95년 2월생인데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간 어학연수 겸 필리핀을 다녀오면서 일반 1995년생들과 친구가 됐다.

2014년 신인왕 경쟁을 펼치던 95년생 3인방은 백규정(22ㆍCJ대한통운), 고진영(22ㆍ하이트진로)이다. 둘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이제 그의 시대가 열릴 준비를 하고 있다. ‘포스트 박성현’ 주자로 장타자 김민선을 높게 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감사는 한데 그런 평가를 받으려면 조금 더 비거리를 늘려야겠고 모든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겸손했다. 오히려 닮고 싶은 선수는 최나연(30ㆍSK텔레콤)이다. 김민선은 “최나연 프로님을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지금은 조금 성적이 안 좋으시지만 항상 꾸준했다. 꾸준한 플레이를 본받고 싶다”고 언급했다.

미국 진출이라는 큰 포부도 머릿속에 그려놓았다. 김민선은 “우승하고 나면 편해져서 그런지 이상하게 1년에 1승밖에 못했다. 올 시즌은 2승, 3승을 하고 싶다”며 “그런 뒤에 미국 진출을 하고 싶긴 하다. 먼저 나간 언니들한테 물어보면 일단 빨리 오라고 한다. 어차피 경험을 쌓을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국에서 쌓은 게 더 좋다고들 한다. 아직은 잘 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우승 경험이 더 많아지면 미국 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플레이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해=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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