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지난 2014년 취임 이후 한국의 단기투자 문화를 강하게 비판해온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혁명적 수준의 어린이펀드(주니어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투자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몸에 좋은 습관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한국에 올바른 투자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다는 각오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자산운용은 국내 투자문화를 바꿀 혁신적인 공모 어린이펀드를 준비 중이다. 투자지역이나 펀드의 형식 등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음 달 금융감독원에 약관 심사를 신청한 뒤 6월에 정식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메리츠자산운용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최근 기자와 만난 리 대표가 대략적으로 제시한 펀드 형식은 ▲20년 폐쇄형(한국거래소 상장으로 환금성 확보) ▲리 대표가 직접 운용 ▲자산의 절반은 국내, 나머지는 해외 투자 ▲판매·운용보수 등 일체 없음, 단 만기 환매 시 이익금의 10%를 수수료로 후취 등이다. 리 대표의 이 같은 제안에 금감원 측은 “왜 남이 안 하는 걸 하려고 하느냐”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20년 폐쇄형펀드라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 대표는 장기투자 문화를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폐쇄형펀드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중도 환매 요청이 있으면 안정적 운용을 못해 다른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다”며 10년 폐쇄형 베트남펀드를 내놓기도 했다.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국내 펀드투자자지만 리 대표의 확고한 철학에 700억원가량 모집에 성공했다.
 
한국 65세 이상 노인층의 빈곤율이 압도적으로 세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노후 준비도 어렸을 때부터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다면 사교육을 집어치우고 일찌감치 주식계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교육은 결코 자녀를 부자로 만들어주지 못할 뿐 아니라 부모의 노후 빈곤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유태인은 아이가 영·유아부터 증권 계좌 열고 주식을 사줘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를 어렸을 때부터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비해 한국 부모들은 돈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리 대표는 이런 상황의 개선을 위해 올해 초부터 매달 첫째주 토요일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무료 투자 세미나를 열고 있다. 리 대표가 직접 강연자로 나서 자녀들과 학부모들이 주식에 대해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장기적인 투자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최근 연임에 성공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금융사 사장은 임기라는 게 있을 수 없는데 한국은 참 이상하다”며 “연임이 있으면 단기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장기적 성과를 낼 수 없게 만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과가 나쁘면 당장 내일이라도 나갈 준비를 해야겠지만 금융사 사장이 임기가 있는 것은 이미 단기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리 대표라도 성질 급한 한국 투자자에게 20년 폐쇄형펀드로 자금을 모을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에 그는 “20년 후에는 내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이 펀드가 한국에 올바른 투자문화 정착을 위한 밀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메리츠자산운용 관계자는 “20년 폐쇄형펀드는 사실상 설정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환매수수료를 대폭 높여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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