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을 맡았던 이한빛 PD의 부고를 들었다. 묻힐 뻔 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유가족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CJ E&M의 진심 어린 사과와 진실 규명을 요구하면서부터다. 입사 9개월 차 신입조연출은 55일 동안 단 이틀만을 쉬면서 일했다고 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드라마 종영 다음 날 영원한 휴식을 택했다.

방송가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목소리로 말한다. 모두가 그렇게 일하고 있다고.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케이블TV, 외주제작사 할 것 없이 방송가의 근무 여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서 보게 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탓일까, 보이지 않는 이들의 피땀 어린 노동력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되는 것이 현실인데도 미디어관련 직종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추세다. 하지만 그 꿈이 실현 될 경우 빛나는 조명이 만들어낸 판타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된 작업 환경과 박봉.

그들에게 주말이나 공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속 방송사가 없는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는 더 혹독하다. 드라마, 예능 방송작가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 53.8시간에 120만6259원이 월평균 수입(2016년 언론노조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2016년)이라고 한다. 최저시급 6,470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3,880원이 그들이 받는 최저시급인 셈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을 이용당하는 ‘열정 페이’는 해도 너무하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화려함에 가려져 대중이 알 수 없었던 방송가의 이면이다.

▲ 연합뉴스

미디어의 특성상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이 분야의 숙명이다. 이에 대한 사명감으로 그들은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해 쉼 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분초를 다투며 밤샘 촬영에 임한다. 꿀맛 같은 잠도, 재충전을 위한 휴식도 모두 포기한 채 오로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분투한다. 하나의 완제품에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들’의 수고로움이 온전히 녹아 들어 있다.

하지만 제작비가 상승해도 스태프의 인건비가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놀랍게도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물가상승률과 임금상승률 비교지표는 해당 사항조차 되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과제를 감당해야 하는 자들에 대한 처우가 시대를 고스란히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스포트라이트의 정점에 서 있는 스타의 몸값이 상승할수록 상대적으로 스태프들의 노력이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건비가 삭감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는 참으로 서글프다.

“내가 너희만할 때는 더 심했어, 다들 그러고도 버티는데, 억울하면 출세해,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여전히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를 강요하는 구시대적 행태, 이를 방송가의 관행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한 젊은 청춘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가혹한 처사일 뿐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데는 익숙한 방송가가 왜 정작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부조리에는 눈감고 있는 것일까. 등잔 밑이 어두워도 너무 어둡다. 이제라도 제도 개선을 통해 비상식적인 관행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제작환경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우수한 한류 콘텐츠를 양산하며 문화강국을 자처하지 않는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방송가의 열악한 현실, 그래서 더 아프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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