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책임져 온 ‘국민 먹거리’들이 많다. 1년은 고사하고 한 계절을 버텨내기도 만만치 않은 시장 상황에서 수 십년간 꾸준히 사랑받기란 어지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고객들의 입맛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 하나로 연구개발에 여념이 없는 기업들의 노력이 서려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의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 온 라이벌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그 경쟁의 역사 덕분에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내공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이쯤 되면 가히 ‘세기의 라이벌’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편집자주>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대상과 CJ제일제당은 대한민국 조미료 시장에서 오랜 라이벌 관계다. 어머니들의 ‘맛의 비법’, ‘마법의 가루’ 등으로 불리던 발효조미료 ‘미원’, ‘미풍’에서 시작된 경쟁은 60년이란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두 사회 경쟁 관계를 싸움이 아닌 대한민국 맛의 수준이 높인 결정적 계기로 해석한다. 1세대(미원, 미풍)부터 4세대(액상)까지 다양한 조미료들이 탄생하는 등 발전도 이뤘기 때문이다.

대상그룹의 창업자주 고임대홍 회장과 미원(왼쪽), 삼성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과 미풍. /대상, 삼성, CJ제일제당

◇‘조미료의 아버지’ 임대홍 대상그룹 회장, 미원 탄생…제일제당 미풍으로 도전장

우선 국산 조미료는 대상그룹의 창업자주 고(故) 임대홍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일본 조료미료 ‘아지노모토’가 점령하고 있던 한국인의 밥상 독립을 위해 195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여의 노력 끝에 감칠맛을 내는 성분(글루탐산)의 제조 공법을 습득했고, 1956년 ‘미원’을 탄생시켰다.

미원은 출시 이후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빠르게 성장했고, 1963 제일제당은 ‘미풍’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양사는 경쟁 수준을 넘어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예를 들어 미풍이 무채칼, 고무장갑 등을 사은품으로 증정하는 ‘김장세트’를 내놓으면 미원은 고급 비치볼, 미원병 등을 제공했다. 또 고급 스웨터를 경품으로 주면 다른 한 쪽은 금반지를 내걸었다. 심지어 양사의 경품 응모 엽서로 우체국이 큰돈을 벌 정도였다. 결국 이 같은 경쟁 과열은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됐고,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제일제당 미풍(위쪽)과 대상 미원의 사은품을 내건 경쟁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미원, 1세대 조미료 시장서 압승…삼성 일군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도 인정

1세대 발효조미료 전쟁에서 판정승을 거둔 것은 대상 ‘미원’이었다. 당대 인기 배우 김지미와 역대 최고 광고모델료 계약을 체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어 배우 황정순과 평화로운 가정의 분위기를 연출한 CF가 여심(女心)을 사로잡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승기를 잡은 미원은 이후 조미료 시장에서 독보적 강자로 군림했다. 실제 60~70년대 최고의 인기 선물 중 하나로 꼽혀 미원 1kg들이 금색 캔을 상자처럼 포장해 선물했다. 대상에서 경복궁의 경회루와 비원의 정자 등을 유화로 그려 넣어 제작한 상자는 최초의 미원 선물상자가 됐다.

무엇보다 삼성과 CJ그룹, 신세계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적었다. 이는 미원이 우리나라 조미료 시장을 대표하는 제품이라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미원 시대별 디자인 변경. /대상

◇‘승승장구’ 미원, MSG 유해 논란에 주츰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미원은 90년대 초 한 식품회사의 ‘화학’ 무첨가 마케팅이 발단이 되면서 MSG 유해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 위기를 맞는다. 게다가 한 종합편성 채널에서 MSG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사들이 MSG에 대한 검증에 나섰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평생 섭취해도 안전”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는 종결됐다. 이와 함께 ‘화학적 합성첨가물’이라는 용어도 완전히 퇴출시켜 소비자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원의 연간 매출액은 약 1000억원에 달하고 시장 점유율은 98%에 육박한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해외 매출은 이보다 많다. 2013년 1780억원에서 2014년 1887억원, 2015년부터 2000억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14년 10월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감칠맛 미원’에서 ‘발효미원’으로 제품을 바꿨다.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를 고려해 L-글루탐산나트륨을 배합하고 핵산의 비율을 줄여 이상적인 감칠맛을 완성했다.

대상 관계자는 “미원과 소비자의 소통 범위를 더욱 늘려나갈 것”이라며 “온라인과 더불어 오프라인에서도 미니 사이즈 미원 샘플링을 통해 젊은 소비자에게 미원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CJ제일제당 종합조미료 '다시다'와 액상조미료 '요리수'. /CJ제일제당

◇‘1세대 완패’ CJ, 다시다 출시로 2세대 조미료 시장 문 열어 

1세대 발효조미료 시장에서 미원에 완패한 제일제당은 1975년 ‘다시다’를 내놓으면서 2세대 종합조미료 시장을 열었다.

업계에선 ‘미원’과 ‘미풍’ 등 발효조미료를 1세대, ‘다시다’나 ‘감치미’ 등 종합조미료를 2세대, ‘맛선생’이나 ‘산들애’ 등 천연재료 지향형 인공첨가물 무첨가 자연조미료를 3세대로 구분한다. 4세대는 물에 녹아드는 속도가 빠른 ‘다시다 요리수’, 샘표 ‘연두’ 등이 있다.

CJ제일제당은 2016년 종합조미료 시장(이하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에서 81.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대상 감치미가 10.5%로 뒤를 잇는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월 ‘산들애’ 론칭 10주년을 맞아 ‘산들애 육수’ 4종과 ‘산들애 요리수’ 1종을 내놓았다. 국내 자연조미료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276억원 규모다. 회사 측은 오는 2020년까지 산들애를 400억원대 브랜드로 키워 시장을 장악할 방침이다. 대상은 ‘맛선생(3세대)’, ‘요리에 한수(4세대)’를 출시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 “불법·편법 등이 난무하는 싸움은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요소”라며 “하지만 공정한 경쟁 관계는 발전은 물론, 문화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상과 CJ가 앞으로도 선의의 경쟁을 펼쳐 음식의 맛과 수준을 끌어올릴 제품을 내놓길 바라”라고 덧붙였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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