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보·주짓수 마스터로 변신

안철웅 관장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수차례 입상하고, 실업 유도 최강전에서도 입상하며 여러 차례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늘 아슬아슬한 순간에 미역국을 마시며 국제 대회에서 단 한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군대도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복무를 마쳤고, 2010년을 끝으로 수원시청 유도팀의 계약 만료가 되면서 나이 서른에 은퇴 절차를 밟게 되었다.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저는 솔직히 유도 선수 생활을 더 할 줄 알았다. 당시 성남시청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지만 얼마 안 가 팀이 해체되었고, 다른 팀에서는 불러주지 않았다. 아직 힘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고, 당시 동체급 선수들과도 겨뤄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많이 아쉬웠다.”

안철웅 관장은 평생 해온 유도를 한순간에 접게 되니 허무함이 밀려오며 폭식증으로 인해 체증이 극심하게 증가했다. 어느 날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라는 생각에 보성중-보성고-한양대 1년 선배이자 2010년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로서 유도 선수 은퇴 후 삼보로 전향하여 국내 최초로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김광섭의 권유로 삼보 종목에 도전하게 되었다.

삼보는 당시 종합격투기 선수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표도르 에밀리아넨코 선수의 주 종목이었고, 워낙 표도르 좋아했던 안철웅 관장은 망설임 없이 제2의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1년 동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유도선수 시절 주특기였던 ‘어깨 들어 메치기’ 기술을 구사하며 수많은 국제 대회서 입상하며 아시아를 제패했다.

주짓수는 올림픽 채택 종목이 아니다. 3대 메이저 주짓수 이벤트는 문디알, 팬암, 아부다비 대회다. 안철웅 관장은 2012년 아부다비 월드 프로 주짓수 본선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 다시 이룬 국가대표의 꿈

아쉽게도 삼보나 주짓수의 단점은 실업팀이 없기에 수익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안철웅 관장은 그 시점에 매일유업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7여 년 동안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유도와 주짓수, 삼보 훈련했다. 주말엔 시합에 출전했다. 운동하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었기에 당연히 시합 결과가 좋지만은 않았다. 메달획득을 한 만큼 많이 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부터 그저 선수 시절의 치열한 경쟁을 떠나 부담 없이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안철웅 관장은 이렇게 운동을 좋아한 나머지 7여 년간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체육관 개관을 결심했다. 하지만 가족부터 가까운 지인들은 ‘정신 차려라’라며 모두 말렸다. 안철웅 관장은 그때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현재 용인대 전기영 교수를 찾아갔다.

“자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충분히 고민하고 잘 준비해서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 거라고 믿네.”

전기영 교수가 따뜻한 보이차 한잔과 함께 건넨 이 한마디의 조언은 안철웅 관장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이 다가왔고 체육관 개관에 확신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안철웅 관장은 현재 1년이 넘어 체육관의 어엿한 관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키즈반부터 시작하여 초, 중, 고, 대, 성인반까지 나이 불문하여 본인이 가진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안철웅 관장은 지금도 삼보와 주짓수 선수로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작년 국내 청주에서 열린 2019년 삼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82kg급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두 번째 판에서 아르메니아 선수에게 역전패당했지만, 그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국가대표로서 시합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앞으로도 승패에 구애받지 않고 쉰 살이 되어도 시합을 나가는 것이 목표다.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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