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고 전경.

[한스경제=글렌다박 기자] 작년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과대학에 합격한 서준영 (20, 남, 가명) 군은 서울대 진학한 지 1학기 만에 내년 입시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코로나19의 강타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며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그는 수능을 위한 인터넷 강의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서준영 군은 서울대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오는 12월 3일 예정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대학 입학 직후 다시 의대 진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진로에 대한 막연함 때문이었다.

“중학교 3년간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 친구들과 생일파티 제대로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과학고에 진학하고 나니 너무나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었다. 그렇게 3년간 죽을 듯 노력해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드라마에 나오는 캠퍼스의 낭만이나 로망 같은 건 없었다. 토익, 텝스, 그 외 제2, 3의 외국어 시험, 공모전, 동아리, 봉사활동, 인턴…. 또다시 대학 졸업 이후 대책을 위한 끝없는 스펙 쌓기가 이어지는데 도무지 내가 원했던 학업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서준영 군은 덧붙여 말했다. “의대 진학을 결심한 것은 굳이 ‘돈’ 때문만이 아니다. ‘부를 축적한다’라는 것은 상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백세시대에 나와 같이 과학고 출신인 사람이 학업과 미래를 위해 같은 노력과 시간을 쏟는다고 가정했을 때 대부분은 회사나 연구소에 입사해 정년에 은퇴한다면, 정년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연구에도 정진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는 의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의대에 입학한 후엔 공대 재학 당시 많은 인원이 그렇듯 대학원이나 회사 입사 지원을 위한 각종 ‘스펙’도 쌓을 필요도 없이 오롯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훨씬 좋을 것 같다.”

1988년 개교한 서울과학고등학교의 경우, 수십억 원의 국비로 지원되는 전국 8곳의 과학영재학교 중 매년 의대 진학률이 가장 높아 영재교육법에 따라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 목적에 대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아왔다. 2019년 2월, 베리타스알파 자체조사 결과 130명의 졸업자 가운데 31명이 의대로 진학하면서 영재학교 전환 이후 의대 진학률 최고점을 찍었다.

이에 서울과학고는 개선책으로 작년 12월, ‘의학계열 진학 억제방안’을 발표했다. 2021학년 신입생부터 의학계열 대학 진학할 경우 학생 1인당 연간 5백만 원, 3년 1천 5백만 원 장학금 및 교육비 환수, 교내대회 받은 상 취소, 의대 진학 희망 학생에게는 일반고 전학 권고 등이다. 하지만 이 방안에는 명백한 허점이 존재한다. 서준영 군 같이 졸업 후, 재수하는 학생은 장학금 및 교육비 환수 대상이 아니다. 십 대의 청소년인 만큼 꿈도 많고, 사춘기를 지나며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다. 의대 진학 희망하였다가 일반고에 가서, 다시 과학고에 돌아오려면 더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전 세계에서 3천 6백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106만여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기사를 매일 매일 접하면서 가장 자주 보고 읽은 기사의 자문은 감염내과, 호흡기내과의였다.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는 백신 개발을 위해 수많은 부호가 기부 및 투자를 시작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함께 협업하여 코로나19 백신 개발 연구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연구에는 일반 과학자뿐 아니라 기초 의학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의학자가 함께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과 그 백신 발견에는 의학자들이 가운데 있었다. 영국의 외과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 (1749~1823)은 천연두의 우두 접종을 발견하였으며,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탄저병과 콜레라의 구체적인 원인 물질을 발견하고 규명하였으며, 1882년엔 최초로 결핵균을 발견한 공헌으로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의사이다. 코흐의 제자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는 알렉산더 예르신(1863~1943)과 함께 간균을 연구했으며, 예르신은 1급 감염병인 페스트균을 발견했다. 둘은 각각 일본과 스위스의 의사이다.

의과대학 교수는 꾸준히 연구를 통해 논문 발표를 하면서도 외래 진료로서 환자를 마주한다. 개원가 의사 중에서도 꾸준히 논문 발표를 하는 의사들도 존재한다. 의사는 의료인이면서 학자이며 또 과학자이다. 시선 중심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틈이 달라질 뿐이다. 이런 의사들이 되겠다는 과학고 재학생들에게 의학계열 대학 진학을 금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만약 과학고 학생들이 정녕 순수 과학 및 기술 분야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자 했다면, 한국영재과학고등학교의 체재를 따르면 되었을 것이다. 2003년 설립된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졸업생이 의대 진학할 시, 고교 졸업장을 수여하지 않음으로서 의대 진학을 원천 봉쇄하여, ‘과학 영재 발굴 및 양성’이라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성과와 전자기기, 반도체, 바이오, 위성 등의 발전 그리고 산업혁명만이 사회의 평온과 지적 활동을 지지하며 다채로움을 가져올까? 세계를 바꾼 놀라운 과학의 성과와 발전 중 의학의 발전은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19 백신의 성공적인 개발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과연 ‘영재교육법’이 지향하는 ‘과학·기술 발전’에 ‘의학’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 옳은 걸까?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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