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도쿄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 당시. /현숙희 씨 제공

[한스경제=글렌다박 기자] 1편에서 계속됩니다.

◆ 너무나도 떨렸던 첫 ‘심판’ 경기

현숙희 선생의 첫 심판 입문은 지도자 입문 시기와 같은 1999년 시작되었다. 현 동아시아 문원배 심판위원장의 ‘이제 심판도 봐야지라’라는 한마디의 권유가 있었다. 그녀의 판단에 선수들의 승패가 좌우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었다. 경험도 없이 심판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처음 심판 배정을 받은 대회는 다름 아닌 국내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합인 국가대표 선발전이었다. 현숙희 선생은 선수 시절 가장 힘들게 다가왔던 국내 시합에 심판으로 선다는 것이 긴장되어 전날 잠도 못 자고 떨면서 심판을 보았다. 첫 심판으로서의 대회가 큰 대회였다는 게 득이었을까? 이는 그녀가 심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운이었다. 세계여성심판세미나, 아시아 여성심판세미나가 처음 생기게 되면서 현숙희 선생에게 참가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국내 심판이 있었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배경이 있었던 것이 혜택으로 작용 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소중하고 의미 있게 획득한 메달이었기에 사회에서 주어진 특혜에 대해 논란이 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고, 되도록 경험 많은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국내외 심판으로 활동하며 공교롭게 국가대표 후배나 제자를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한 번은 배정된 대로 들어가서 심판을 보는데 광영여고 제자가 들어왔다. 물론 제자라 잘 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심판의 중심을 가지고 명철하게 심판을 보다 보니 제자가 패하게 되었다.

“기술로 넘어갔기에 완벽한 패배였어요.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서 얼마나 미안하고 속이 상하던지, 그리고 제자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현재는 심판과 선수 사이에 조금이라도 판정에 객관성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된다면 추후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미리 심판 배심원에게 건의하여 모든 심판이 본인 제자나 소속이 겹쳐 심판을 보게 되면 바로 교체할 수 있게 되어있다.

유도의 경우엔 유독 심판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조준호 선수 경기나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안창림 선수 경기 등 오심 또는 편파판정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유도 종목이 예로 나온다. 런던 올림픽 이후 오심을 줄이고자 비디오 케어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상황에 따라 득점, 벌칙 등 심판이 잘못되었을 때는 센터 테이블의 슈퍼바이저들이 각 경기장에 배치되어 심판위원장과 판단을 내리게 된다.

“저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조준호 선수의 경기를 보고 심판이 판정을 번복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이후 ‘주심의 승자 선언이 되었다고 해도 선수가 매트를 떠나기 전까지는 번복할 수 있다’라고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현숙희 선생도 서울체고 재학 시절 깃발 판정이 있을 때 대학교 선수에게 2:1로 패한 적이 있다. 그녀는 본인이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깃발 판정으로 지게 되니 분해서 속이 상했다. 되려 국제대회에서는 졌다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이긴 적도 여럿 있었다. 심판이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심이나 편파판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의 경험들이 모여 그녀는 매일 매일 훨씬 더 신중하고 명철한 심판이 되어갔다. 현숙희 선생은 2016년 서울시체육회 우수 심판상을 수상하였으며, 2020년 제65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우수심판상을 수상하며 심판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2020년 도쿄올림픽 심판으로 선정된 16명의 심판 중 여성 들과 함께. /현숙희 씨 제공

◆ ‘심판’으로 다시 서게 된 올림픽 무대

우리나라에서는 유도 4단 이상의 유단자라면 심판 교육을 이수한 후, 시, 도 지역(서울, 경기 등)에서 2급 심판 자격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2년간의 지역 대회 심판을 경험한 뒤에 각 시, 도 지역 심판위원장의 추천과 승인을 거친 후에 대한유도회로 추천서를 올리면 1급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1급 시험은 2일간의 심판교육을 받은 뒤, 이론시험과 실전시합에 들어가 실기시험에 응시하게 된다. 합격자는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과 심판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의 경우, 4년간의 수업과정에서 4단증과 2급 심판 자격증을 받을 수 있기에 유리하다.

현숙희 선생은 용인대학교 유도학과를 졸업하여 국가대표 선수 은퇴를 하였을 때 바로 1급 심판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되었고, 전국 대회에서 2년간의 경험을 마친 뒤 바로 콘티넨털 국제 2급 심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국제 1급 심판 시험 응시하기 위해 4년간 여러 국제 심판 세미나와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의 심판에 참가하였다. 후에 국제 1급 심판 시험에 합격, 국제 1급 심판이 되었다. 이렇듯, 그저 ‘심판 자격증’이 있다고 하여 ‘국제 심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노력도 굉장히 많이 필요하며 엄청난 양의 공부도 해야 한다.

“저에게 심판의 자부심은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해서 국제심판이 되어 올림픽 심판이 된 것이고, 더욱이 유도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 유도 올림픽 심판에 선발되기까지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매력은 한판으로 선수를 넘겼을 때 선수도 짜릿하지만, 심판도 한판을 선언하며 한 손을 번쩍 들 때 함께 짜릿함을 느낀다는 점 같습니다. 특히 라이벌 경기와 더 중요한 결승경기엔 더 그렇고요.”

유도 종목 올림픽 심판은 총 16명으로 구성된다. 국제 1급 심판 중 2017년 2월 파리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부터 2021년 1월 도하 마스터즈 대회까지 출전해 받은 심판의 평균 점수 내에서 랭킹 순위를 정한다. 랭킹이 높아도 한 대륙으로 몰아서 심판을 배정할 수 없으므로 쿼터가 정해져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 유도 심판의 쿼터는 유럽 7명, 아프리카 1명, 아메리카 3명, 아시아 4명, 오세아니아 1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현숙희 선생이 최종 발탁되었다.

현숙희 선생은 지난 2017년부터 올해 2021년 1월까지 모든 각종 국내외 대회와 심판 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심판 테스트를 받으면서 유독 시련과 힘든 과정이 많았다. ‘포인트가 낮게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도 있었고, 결과가 안 좋으면 실망했다가 또 딛고 일어서고 점수가 올라가면 자신감이 회복되는 것을 반복했다. 그녀는 올해 2월 초, 올림픽 심판에 임명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메일 받은 게 혹시 꿈일까 봐서요. 아니라고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같은 메일이 대한유도협회에 도착했는지 국제 담당 부서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시며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시며 알려주시더라고요. 세계유도연맹 홈페이지에도 올림픽 심판 명단이 기사로 나오고. 전기영 교수가 SNS에 포스팅으로 소식을 올려주고. 그제야, ‘아, 진짜 된 거구나’ 실감이 났어요.”

올림픽이 개최되면 하루에 남녀 1체급씩 경기 수는 하루 네 경기씩 8일간 펼쳐지며 현숙희 선생은 32경기에서 심판으로 참가하게 된다. 주심, 부심 등의 선정은 예선에서는 똑같이 배정하게 되며, 예선전에서 실수가 있었다던가 올라간 선수의 나라와 대륙별에 따라서 주심 선정을 심판위원회에서 배정하게 된다. 경기 심판이 배정이 안 되어 시간이 날 때는 동료 심판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애를 다지기도 하며, 경기를 마치고 그날 있었던 경기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올림픽마다 과거엔 허용되었으나 없어진 기술 또는 새로운 기술과 규정을 보게 된다. 2016년 리우 올림픽과 비교하여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도복을 입었을 때 도복 벨트로 기준을 정하여 벨트 밑으로 손이 바지를 잡거나 터치가 이루어지면 ‘지도’라는 벌칙을 주는 것이 새로 생겼다. 또한, 흐트러진 도복을 ‘그쳐’하는 순간에 스스로 그치지 않으면 한 번은 ‘예시’, 두 번째부터는 ‘지도’가 주어지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기술의 경우 특별히 없어진 기술은 없고, 골든스코어에서 득점을 하면 바로 끝나는 것은 당연하고, 골든스코어에서 ‘지도’만 받아도 승패가 결정 났던 것이 ‘지도’ 3개가 주어져야 경기가 끝나게 된다. 벌칙이 강화되면서 ‘지도’에 대한 페널티가 세분되었다.

현숙희 씨의 사랑하는 가족. /현숙희 씨 제공

◆ 국제 심판 및 지도자로서 목표와 꿈

현숙희 선생이 국제 심판이 되기 전 일정 기준 이상 권위 있는 규모의 대회에서 심판을 보기까지 대동하는 심판들은 자비로 항공료와 숙박료를 부담하고 다녔다. 각종 세미나와 국제 심판 아카데미 등에도 자비로 참가해야 하니 엄청난 부담이다. 지금도 여러 타 종목의 국제 심판은 자비로 심판 참가 비용을 부담하는 때도 많다. 현숙희 선생은 현재 심판으로 참가하는 대회는 세계유도연맹에서 항공예약, 항공권, 숙박비, 식비 등 모두 다 지불하여 일절 그녀에게 금전적인 부담이 없다. 심지어 심판을 보는 일수대로 수당도 받는다. 좋아하는 심판을 보며 호사를 누리니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나 이 부담이 없는 환경에 도달하기까지 그녀가 겪어야 했던 힘든 과정과 마음고생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숙희 선생은 ‘노력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1989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1998년 국가대표 선수로는 은퇴를 하였지만 2001년까지 북제군청 소속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하였다. 광영여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경기에서 심판을 보는 바쁜 와중에 2007년 용인대학교에서 체육학 박사과정을 끝내고 논문 심사까지 무사히 통과하며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이후 서울대, 용인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2013년 유도 청소년 국가대표 코치로 선임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쳤다.

현숙희 선생은 꿈이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이 무사히 개최되어 심판으로 참가하여 대회를 잘 마치고 나면 유도 심판에 관한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그녀가 그동안 걸어왔던 과정들과 올림픽 심판이 되기 위해 준비하던 과정, 결과, 수많은 다양한 나라의 심판 친구들과의 만남과 그들에게서 받은 도움, 국제 심판으로 사는 삶을 더 깊이 소개한다면 국제 심판을 준비하는 국내 유도계 동료, 선, 후배,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독자들에게도 유도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제가 전 세계를 다닐 수 있었던 일들도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자신감을 주고 싶어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유도 경기장에서 울려 퍼졌던 애국가가 이번엔 현숙희 선생이 심판으로 활약할 2020년 도쿄 올림픽 유도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길 바라며.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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