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올해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말 기준 운용자산이 564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어떤 운용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코스피의 향방이 좌우되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두고 정부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국민연금이 정말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 동의를 두고서는 별다른 잡음이 일지 않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국민연금이 완전히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여전하다.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주 사옥 전경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해 국공립 어린이집·임대주택·요양시설 등을 짓겠다는 공약을 하는 등 정치적 이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방침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해 말 도입됐지만 콧방귀도 안 뀌던 국민연금이 최근 관련 연구 용역 입찰을 받는 등 도입 준비에 착수했다. 문 후보가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의식해 알아서 눕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여전히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양상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심의·의결한 ‘국민연금 기금운용 중기(2017~2021년) 자산 배분안’ 역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분안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목표비중은 ▲국내 주식 17.5% ▲국내 채권 40% ▲해외 주식 24.5% ▲해외 채권 4% ▲대체투자 14%다. 올 2월말 기준 국민연금은 564조 중 107조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18.9%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을 두고, 국내증시의 낮은 수익률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자신의 업적을 높이기 위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기존 배분안에 비해 더 높게 변경하거나 줄이지 않는 쪽으로 변경할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하락하거나 정체될 경우, 정부에 대해 화살이 쏟아지기 마련이어서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국민연금의 감독과 이사장·기금운용본부장(CIO) 인사 등에 복지부(장관)가 관여하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다. 또 정부기관으로서 복지정책과 떼어낼 수 없는 만큼 국민연금이 아예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복지부 장관이 바뀌고 새 국민연금 이사장이 오면 당장 임기가 내년 2월까지인 강면욱 CIO의 임기도 보장받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강 CIO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고교·대학 후배로 새 정부가 곱게 볼리 없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부라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증시 부양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새 복지부 장관과 이사장이 선임되는 마당에 중기 자산 배분안이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 역시 “자산 배분안은 전적으로 복지부에서 하는 것이어서 기금운용본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박경서 고려대학교 교수는 “국민연금이 2033년 2,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해외투자를 늘리지 않는 것은 좁은 어항에 고래를 가둬두는 꼴이될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를 강요한다면 주가가 왜곡되고 북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수익률이 급락할 수도 있는 등 위험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놓고도 ‘연금 사회주의’ 우려
 
국민연금이 올해 안에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두고도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난 10일 기준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278개에 달한다. 국내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 지분도 9.27%나 갖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 열쇠로 여겨지고 있지만, 자칫 기업 경영에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간섭하면서 장기성장을 침해하고 또 다른 정경유착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캐나다나 네덜란드 등 선진국처럼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함께 위임하는 것이 적절한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은 “위탁운용사에 의결권도 함께 넘겨주고 각자 의결권을 행사하게 하면 연금 사회주의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며 “공사화를 통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처럼 자체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박경서 교수 역시 “공사화를 한 뒤 자산운용 전문가로 이사회를 꾸려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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