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 12 개 지역에 길이 450m 의문의 쉘들이 날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가 의문의 신호를 보낸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은 그들의 신호를 해석하고자 한다.

▲ 사진 =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선보이는 첫 SF 영화다. 제 22 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SF 작품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제 74 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2 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며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토마토가 집계한 신선도 지수도 94%를 기록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은 테드 창의 1998 년 단편 소설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이다. 원작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으나,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에서 지난여름 ‘Arrival’로 변경하였다.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 제목과 달리 외계 생명체가 출현하는 SF 장르라는 것을 더 부각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개봉은 또 다른 이름이다. ‘Arrival(도착)’을 그대로 쓰면 ‘어라이벌’이다. 배급사 UPI 측은 '어라이벌' 역시 멋진 제목이지만 보다 쉽고 접근성이 있는 제목을 고심하다 지금의 제목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궁색한 이유이긴 하나, ‘어라이벌’이라는 제목의 어감이 국내 팬들에게 익숙지 않고 영화의 내용을 유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 취지에 적합한 제목인지는 논란이 있다.

▲ 사진 = 영화 '컨택트'

“이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게 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가 늘 그래 왔다. 극적 스토리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 평론가는 그의 영화에 대해 '멱살 잡고 끌려 들어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거대한 쉘들을 비추는 익스크림 롱샷과 배우들의 표정을 비추는 클로즈업이 주로 활용된다. 촬영 방식을 통해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쉘의 바깥에서는 주로 롱샷으로 주변 환경을 보여준다. 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화면은 인물들을 클로즈업하거나 인물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쉘 안의 좁은 공간에서 핸드 헬드*와 클로즈업을 활용해 동일한 곳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착각을 만든다. 훌륭한 음악 또한 우리의 체험을 돕는다. 
(*핸드헬드 : 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 특히 카메라를 트라이포드(삼각대)에 장착하지 않고 들거나 어깨에 메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

 

▲ 사진 = 영화 '컨택트'

외계 생명체들이 온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 두 명의 학자가 투입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이론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은 그들이 온 이유를 알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려 한다. 12 개의 쉘이 인류에 해가 될지 득이 될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갖고 있는 '낯선 것에 대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다. 그런 편견에 대해서 고려한 것인지 감독은 루이스와 정부 관계자 간의 논쟁, 미국과 중국의 대립 등을 통해 낯선 외계 물체를 보는 여러 시선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외계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영화다."

외계인의 외형이나 가진 능력에 관심을 가졌던 그동안의 영화와 달리 '컨택트'는 그들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의 첫 번째로 외계인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외계 생명체가 마치 7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문어처럼 생겼다. 그들의 외형에 착안해 헵타포드(heptapod)라는 명칭을 붙인다. 전 세계 12 개 지역에 쉘이 나타났다. 12 개 지역이 모두 동등하게 조명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이 가장 큰 비중이다. 이는 미국이 바라보는 국제정세에서의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 사진 = 영화 '컨택트'

외계인들의 언어인 헵타포드어(Heptapod Language)를 익힌 루이스는 미래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외계 생명체에 대한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는 중국을 설득한다.
설득을 하기 위해 그녀는 중국 상장군에게 미래에 그의 부인이 남긴 유언을 들려준다.
중국어로 대화하는 그 장면에서 자막이 없었다. 북미판에도 자막이 없어 많은 영어권 국가에서 궁금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상 장군 아내의 유언이다.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오직 과부만 남을 뿐이다.”
(War does not make winners, only widows.)

 

▲ 사진 = 영화 '컨택트'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있다. 사피어워프의 가설(Sapir-Whorf hypothesis)과 비선형 문자(NonlinearOrthography)다. 이 영화는 '사피어워프의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전제로 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영화 중반에 이안은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루이스에게 외국어로 꿈을 꾸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이들은 단순히 대화를 위해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했지만,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이 가설을 전제로 행동하여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고,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헵타포드어(Heptapod Language)를 배운 루이스는 외계인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걸까. 루이스는 헵타포드어에 능숙해질수록 미래의 환영을 경험한다. 헵타포드가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달리 ‘비선형 문자 (Nonlinear Orthography)’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언어는 선형(linear)으로 시작과 끝이 있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표현한다. 그러나 헵타포드어는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이고, 시간의 흐름이 직선이 아니다. 즉, 헵타포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부 하나로 체험하는 종족이다. 비선형적인 언어 사용과 사피어워프 가설의 만남으로 루이스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통해 미래의 환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헵타포드어 습득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어린 나이에 죽게 될 딸을 낳고 소중하게키운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거부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충분하게 느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게 한다. 그 체험을 통해 영화적 긴장을 이끌어내지만, 영화 말미에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루이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진 = 영화 '컨택트'

루이스에게 미래의 불행은 딸의 죽음이다. 미래에 느낄 감정을 미리 느낀다. 인생이 불안한 이유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는 안정적이고 행복해질 것인가.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처럼 보인다. 내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 루이스는 미래를 알았다. 자신의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미국 영화 사이트 ‘스크린랜트(screenrant)’는 영화 <컨택트>를 소개하며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Ralph WaldoEmerson)의 격언을 인용했다.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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