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가 살인자가 됐다.”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현우(강하늘)는 경찰의 강압수사로 누명을 쓰고 10 년의 수감생활을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과 흩어지고 빚마저 쌓인 고졸 출신 변호사 준영(정우)은 현우의 사건을 듣는다. 그는 이 사건이 명예를 얻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현우를 돕기 시작한다. 현우와 만난 준영은 사건을 실체를 알게 되고 정의감이 되살아난다.

▲ 사진 = 영화 '재심'

영화 '재심'은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일명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극화한 작품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3년 6월 15일(898회), 2015년 7월 18일(994회) 2회에 걸쳐 이 사건을 다뤘다. 프로그램에서는 오로지 ‘자백’만으로 목격자를 살인자로 둔갑시킨 경찰, 검찰, 법원이 3년 후 체포된 유력 용의자는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라며 사회로 돌려보냈던 이야기를 담았다.

 형사소송법 제 310 조에 의하면 ‘자백이 유일한 증거로 되는 경우에는 유죄로 되지 않는다’고 적시되어있다. 이는 자백을 담보하여 오판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자백 편중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려는 데 있다.

 

▲ 사진 = 영화 '재심'

 

다큐멘터리 스타일이 아닌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 선택”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실화를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실화를 영화적인 스토리 안에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실존인물뿐만 아니라 허구의 인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배우 이동휘가 맡은 창환이라는 역할이 있다. 변호사 준영(정우)의 고시생활을 함께한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다. 창환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동룡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 영화 초반 그가 툭툭 내뱉은 농담은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영화 말미에 하는 행동은 '동룡이가 왜 저래?'라고 느껴지며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플래시백을 통해 드러냈다. 이미 알려진 사건이고 한 장소에서 많은 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사건 소개 장면을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실제와 허구의 틈을 메우는 것은 연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실제 이야기와 허구 이야기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다. 실제와 허구의 틈을 메우는 것은 강하늘과 정우의 연기다. 강하늘과 정우를 클로즈업했을 때 느껴지는 몰입도는 놀랍다. 영화 '동주'를 통해 실화 영화를 경험한 강하늘은 이번 영화에서 주연배우로서 스토리 전체를 이끄는 힘 있는 연기로 그의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는 김해숙이다. 현우의 엄마 역을 맡은 김해숙은 영화 '재심'을 단순한 범죄 추적 영화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휴먼 드라마로 탈바꿈시킨다.

 감독은 영화 촬영 3 개월 전부터 전국의 오거리를 전부 찾아 다녔다. 대한민국에 오거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가는 것에 당황했다. 실제 영화에 등장한 오거리는 전북 김제의 용동 오거리다. 인적이 드물고 소도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

 

▲ 사진 = 영화 '재심'

“당신이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동안 다양하게 재구성되어 관객을 만났다.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일대기를 다룬 '변호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광주 인화학교의 인권 유린 사태를 소재로 공분을 샀던 '도가니' 등 실제 일어났던 범죄사건을 다룬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끊임없이 감독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영화적인 완성도보다는 실화라는 전제가 있을 때 더 손쉽게 몰입하고 긴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화를 다룬 범죄영화들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대부분은 ‘우리도 범죄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영화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영화 '재심'은 그 반대로 말한다. ‘당신이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형사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 피의자의 인권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범인이 확실한데 무슨 인권을 지켜줘?”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게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이다. 우리는 경험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영화 '변호인'과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평범한 학생들이 간첩으로 누명을 쓴 채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고된 수감생활을 견뎌야 했던 것을. 영화 '재심'은 그 억울한 사람들이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 영화 '재심'

 

“살인범이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어.”

영화 '재심'은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기자는 법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라도 그 소년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기자의 소개로 피해 당사자와 그의 어머니를 감독이 직접 만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김태윤 감독은 약촌오거리 사건이 곡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영화 '재심'에서 배우 정우가 맡은 '준영'이라는 캐릭터의 실제 인물은 재심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다. 그는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을 통해 그는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억울한 일이 발생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그것은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들에게 인정하고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억울한 누명으로 젊은 20대 시절에 1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현우는 우리 사회를 믿고 적응할 수 있을까. 현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변호사 준영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느끼고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를 알아챈 준영은 현우를 찾아가 말한다.

 

“법이 너에게 사과할 기회를 줘라.”

 

2016년 10월 영화 '재심' 촬영이 끝났다.(크랭크업) 그리고 2016 년 11 월 17 일 누명을 쓴 소년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 사진 = 영화 '재심'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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