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소산성. 사진=김성환기자

 

여행하기 좋은 여름이 가고, 여행하기 더 좋은 가을이 왔다. 고즈넉한 산성 찾아 성곽 따라 걸어본다. 마음도 가을처럼 차분해진다. 충남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 가을 들머리에 참 걷기 좋다.

부여는 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였다. 천년 세월의 흔적이 오롯한 역사의 보물 창고다. 부여 사람들은 금강을 백마강이라고 부른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른다. 백마강을 한눈에 굽어보며 자리 잡은 곳이 부소산성이다. 위례성(서울), 웅진(공주)에 이어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사비(부여)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현장이다.

백제는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며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산성을 쌓았다. 둘레는 약 2.2km. 해발 106m의 낮은 산인데다 소나무, 왕벛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 사이로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과 노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산성 안에는 문화재와 유적들이 즐비하다. 숲길이 이를 잘 연결한다.

그 유명한 낙화암이 산성의 백미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산성광장에서 가깝다. 낙화암 바로 앞에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다. 백마강과 이를 거슬러 오르는 유람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 예쁘다. 백제 최후의 날이 수면의 파장을 타고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낙화암에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고란사다. 낙화(落花)가 된 백제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지금도 식수로 애용되는 고란수가 나오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초 식물 고란초가 있다.

반월루도 올라본다. 역시 산성광장에서 가깝다. 부여읍내와 구드래 들판, 반월형으로 읍내를 감싸고 도는 백마강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군창지다. 백제시대 곡물을 저장했던 창고가 있던 자리다. 지금은 건물의 초석들만 남았다. 오후 볕 곱게 내려앉으면 그날의 흥성거림이 되살아난다. 군창지 뒤에는 백제의 왕과 귀족들이 계룡산 연천봉에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하루를 계획했다는 영일루가 있다.

부소산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숲길이 태자골숲길이다. 산성광장에서 군창지 인근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약 1km 남짓한 숲길인데, 옛날 백제 왕자들이 산책하던 길로 알려지며 ‘태자골숲길’이라 이름 붙었다. 현지인들이 산책 삼아 걷는 길이라 사위가 고요하다. 산책하던 태자들이 마셨다는 태자천, 낙화암에서 생을 마감한 궁녀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인 궁녀사도 볼 수 있다.

삼충사도 둘러본다. 백제의 삼충신으로 꼽히는 성충과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영일루에서 부소산문 방향으로 향하면 있다. 삼충사에서 부소산문까지 이어진 길은 소나무가 울창하고 널찍한 돌이 깔려 있어 산책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김성환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