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20 대표팀/사진=KF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신태용(47) 감독이 이끈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 대표팀과 조별리그에서 격돌했던 잉글랜드가 지난 5일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를 1-0으로 따돌리고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행 막차 티켓을 따냈다.

이로써 이번 대회 4강은 유럽 2개 팀과 남미 2개 팀이 격돌하는 양상이 만들어졌다. 미국을 꺾은 베네수엘라(2-1 승)는 조별리그부터 전승 행진을 이어가며 승부차기 끝에 포르투갈을 제압한 우루과이(2-2, 5-4 승)와 맞붙는다. 우루과이는 유럽의 각종 베팅 사이트에서 배당률(5배)이 가장 낮은 우승 후보 1순위다.

거함 프랑스를 격침시키고 8강에서 한 명이 퇴장 당한 수적 열세에도 아프리카 돌풍 잠비아를 잠재운 이탈리아(3-2 승)는 잉글랜드와 격돌한다.

8일 열릴 우루과이-베네수엘라(대전), 이탈리아-잉글랜드(전주)의 4강 대결은 남의 나라 잔치가 됐지만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잉글랜드의 선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진단이다.

잉글랜드는 축구 본가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우승 후보에서 비껴나 있었다. 기대를 모았던 마커스 래쉬포드(20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특급 유망주들이 빠진데다 지난해 U-18ㆍU-19 대표팀은 한국에게 각각 0-2ㆍ1-2로 패했다.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 첫 경기에서도 이겼지만 내용상으로는 압도를 당했다.

불안했던 잉글랜드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해졌다. ‘U-20의 사나이’ 조진호(44) 부산 아이파크 감독의 “잉글랜드는 개개인의 능력이 좋고 스피드가 뛰어나다”는 평가에 걸맞게 4강까지 올라 내친 김에 우승을 바라보게 된 케이스다. U-20 잉글랜드호를 이끄는 폴 심슨(51) 감독은 당초 목표가 성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대회 내내 폭 넓고 다양한 선수기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심슨 감독은 “과거 20년 동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높은 데까지 올라가 보고 싶다”면서도 "선수들을 성장시켜 A대표팀에 데뷔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팀에 변화를 주는 것은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클럽을 비롯한 잉글랜드 축구계가 EPL 선수들의 대회 차출을 기꺼이 허락한 측면이 크다. 영국의 축구 해설가 토니 록우드는 "구단들은 국제 대회에서 선수들이 마음껏 경기력을 보여주길 원한다"며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번 대회를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심슨 감독은 이전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릴 수 있었고 뜻대로 훈련을 진행했다. 대회에서는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뛸 기회를 비교적 공평하게 부여하는 과정이 좋았다. 그 결과 점점 더 강해지는 잉글랜드는 기대치 않았던 성적(우승)마저 손에 넣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신태용호의 결과에만 연연했던 시선들과 대비된다.

어린 선수들이 격돌하는 U-20 대회는 결과가 동반돼야 할 성인 월드컵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잉글랜드는 유망주의 국제적 성장 과정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했다. 그런 측면에서는 포르투갈과 16강전에서 패하고 비난에 직면한 신태용호도 반드시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신 감독은 급작스럽게 지휘봉을 잡고 6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즐기고 신나고 창의적인 축구를 어린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대회 기간에는 선수 로테이션을 감행하고 다양한 전술을 시험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처럼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을 뿐 과정만 놓고 보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유망주들이 골고루 성장할 토대를 마련했다.

정재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