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중곤(왼쪽)과 캐디 형/사진=KPG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여자 프로 골프 인기에 밀려 주춤했던 남자 대회가 바야흐로 부활의 나래를 펴고 있다. 대폭 늘어난 투어 일정은 신호탄이다. 대회를 거듭하며 예상치 못한 진기록과 화젯거리들이 쏟아져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6월로 접어든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최근 화두는 ‘신스틸러’와 ‘용감한 형제’로 요약된다.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KPGA에서 역대 처음으로 2주 연속 같은 선수가 연장전을 벌여 긴장감을 고조시킨 라이벌전이 등장하는 가하면 형제를 캐디로 앞세운 선수들이 연달아 우승을 하고 있다.

무명이 스타가 되고 스타가 라이벌로 거듭나는 시나리오는 흥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요즘 KPGA에서는 이정환(26ㆍPXG)과 김승혁(31)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둘은 우연찮게 6월 벌어진 데상트 코리아 먼싱 웨어 매치 플레이와 카이도 골든 V1 오픈에서 2주 연속으로 연장 승부를 벌여 1승씩 사이 좋게 나눠가졌다.

결과는 훈훈했지만 과정은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전대미문의 양보 없는 전쟁은 골프계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신스틸러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용어로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서 주연 이상의 주목을 끄는 조역을 뜻한다. 그 동안 주연이 최진호(33ㆍ현대제철)나 박상현(34ㆍ동아제약), 이상희(25ㆍ호반건설) 등이었다면 이정환과 김승혁이 감초 같은 조연으로 투어를 건강하게 살찌우고 있다. KPGA 선수권에서도 비교적 좋은 성적(이정환 12위ㆍ김승혁 16위)을 낸 둘의 플레이는 팬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이정환은 25일 끝난 KPGA 선수권에서 깜짝 우승한 황중곤(25ㆍ혼마)과도 공통분모를 이어간다. 지난주 이정환이 캐디백을 멘 동생 정훈(23)씨와 우승을 일군 데 이어 황중곤이 캐디 형 중석(28)씨와 함께 정상에 올랐다. 2주 연속으로 ‘용감한 형제’ 스토리가 써진 것이다.

이정환은 결정적인 순간 옆에서 긴장을 풀어준 동생에게 공을 돌렸고 황중곤 역시 약 3년만의 국내 대회 우승에 캐디 형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2015년 일본 카시오 월드 오픈 우승 이후 슬럼프에 빠져있던 황중곤은 스포츠 의학을 전공한 트레이너 형과 호흡을 맞추면서 성적이 좋아졌다. 올해 국내 대회에 출전할 때는 무조건 형에게 백을 맡겼다. 그 결과 지난 5월 SK텔레콤 오픈에서 공동 8위에 오른 것을 포함해 형제가 함께 출전한 대회 모두에서 톱10에 들었다. 경기 후 황중곤은 마사지도 책임지는 고마운 형에게 “퍼트가 약한 편인데 형이 퍼팅 라인을 잘 읽어 도움을 많이 받는다”며 “사례를 얼마나 해야 할지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웃었다.

이밖에 올해 KPGA 투어에서는 최고령 컷 통과자가 나오고 그 어렵다는 홀인원이 한 라운드에서 한꺼번에 3개나 쏟아지는 등 화제 만발이다. KPGA 선수권 2라운드에서는 조병민(28ㆍ선우팜), 김진성(28), 김봉섭(34ㆍ휴셈)이 같은 날 홀인원을 작성했다. 홀인원 3개는 역대 한 라운드 최다다. 지난 5월 매경 오픈에서는 최상호가 만 62세 4개월 1일의 나이로 최고령 컷 통과 기록을 세워 노년층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양한 이슈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KPGA의 인기 부활에 호재다. KPGA 관계자는 “선수들이 재미있게 경기를 해주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면서 갤러리들이 많이 오고 있다”며 “일단 이렇게 매일 스토리가 나오는 것이 고무적이다. 다른 대회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까 기대감이 생긴다. 협회 차원에서는 경기마다 이슈가 나오면 보도 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걸 기준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이벤트나 다른 것들로 연계시킬 수 있으면 엮어서 활용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