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상조적금 가입하면 TV를 100만원 깎아드립니다."

가전제품을 구매하려 대형매장에 방문했던 A씨는 월 5만원, 10년 납입식 적금에 가입하면 150만원짜리 TV를 50만원에 살 수 있다는 홍보문구에 걸음을 멈췄다. 점원은 만기시 100% 환급되는 ‘상조 적금식 보험’이라며 가입을 권유했다. 덜컥 계약을 맺은 A씨는 얼마 뒤 해당 상품이 적금도, 보험도 아닌 상조상품인 데다 환급금이 100%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황당했다.

일부 상조사들이 상조 상품을 적금이나 보험 등의 문구로 속여 파는 사례가 있어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고가의 제품을 사은품이나 할인으로 붙여 장기 계약을 유도하고 있어 자칫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조상품은 선불식 할부 상품이다. 상조보험과는 보장 내용과 관리주체가 다르다. 상조상품과 상조보험을 제대로 구분해 가입하지 않으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 9일 오후 서울 강북구의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상조상품을 적금으로 명시해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사진=허인혜 기자

최근 일부 상조사들이 상조상품의 ‘선납식 할부’ 특성을 이용해 ‘상조 적금’ 등으로 둔갑해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사실상 상조 적금은 유명무실한 상품이다.

선납식 할부란 미래에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미리 일정금액을 일정기간 단위로 납부하는 것으로, 여행상품이나 상조상품이 대표적이다. 일정이 정해진 여행상품과 달리 상조상품은 완납을 할 때까지 장례 서비스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상조사는 완납한 할부금을 일부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 환급금을 마치 만기 적금 수령액처럼 둔갑시킨 것.

만기시 전액 보장이라는 말도 짚어봐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상조상품 표준약관에는 만기환급률을 85%로 책정한다. 영업비와 관리비 15%를 뺀 금액으로, 85%만 환급해도 법적인 ‘100% 환급’이다.

‘1금융권 담보보증’도 말장난 꼼수다. 상조사는 할부거래법에 의거해 소비자 납입액의 50%를 은행권에 예치하거나 공제조합에 가입해야 한다. 원금을 보장하는 보증 수단이 아니라 상조사가 폐업하면 일부나마 지켜준다는 의미다.

또 상조상품에 가입하면 고가의 제품을 할인해 준다는 문구에 마음에 동했다면 표준약관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

예컨대 5만원 납, 10년 만기 상품에 가입한다면 납입액은 600만원이다. 금리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현 기준 90만원 가량의 이자를 수령할 수 있다. 환급금을 납입액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또 상조상품 중도 해지시 할인액을 돌려줘야 하고, 여태까지 낸 상조상품 할부금도 위약금을 물어주어야 환급 받는다. 따져보면 할인이 아니라 상조사 포인트를 따로 구매해 지원을 받는 형식이다.

상조상품을 상조보험으로 속여 파는 행위도 불완전판매에 속한다.

상조보험은 보험사가 취급하는 상품이다.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2015년을 전후해 거의 모든 보험사가 판매를 중단했다. 이 틈을 타 상조사들이 상조상품을 보장성 보험인 양 홍보하고 있다.

상조보험은 납입액이 보장금액보다 적어도 보장 기준을 충족하면 보상해 준다. 피보험자 사망 후 미납입액을 지불해야 할 의무도 없다.

반면 상조상품은 만기일 전에 장례를 치를 시 잔여대금을 완납해야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법적으로도 보험업법이 아니라 할부업법 규제를 받는다.

상조사의 자본잠식 등 부실 상황이 심각하지만,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폐업시 극심한 피해가 우려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초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며 “상조업은 보험업과 유사하지만 금융법, 공정거래법 등 어떤 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을 기준으로 190개 상조업체 중 111개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라고 밝혔다. 상위 10개 대형사도 8곳이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자본잠식이란 만성적인 적자로 회사의 자본금을 까먹으며 운영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공제조합 담보금도 10%를 하회해 폐업시 납입액을 잃을 위험도 높다. 공정위의 6월 자료에 따르면 상조업체 중 공정위로부터 시정권고 이상의 조치를 받은 업체들의 위반유형은 열에 아홉(87.5%)이 선수금 미보전이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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