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배우 나문희가 설 연휴 동안 흥행하며 8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수상한 그녀’(2013년)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21일 개봉)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이번 영화 역시 추석 연휴 동안 간판을 걸며 명절 극장을 사로잡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명절에는 가족영화’라는 공식과 어울리는 영화다. 위안부 피해자 소재를 휴먼코미디라는 장르로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나문희는 코믹하면서도 페이소스 있는 연기로 두 시간 남짓한 영화를 이끌어간다.

나문희는 전작 ‘수상한 그녀’에서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욕쟁이 칠순 할매 오말순 역으로 2014년 설 극장가를 사로잡은 바 있다.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청춘을 누리지 못한 할머니에게 찾아온 제 2의 전성기를 그려내 관객의 호평과 공감을 자아냈다. 여전히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은 나문희의 인생 캐릭터로 각인돼 있다.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온 동네를 휘저으며 사사건건 참견하고 민원을 청구해 구청에서 ‘도깨비 할매’라는 별명까지 얻은 나옥분으로 분해 코미디와 가슴을 울리는 가슴 아픈 연기까지 소화했다. 수북이 쌓인 민원 접수 서류로 구청 직원들을 피곤하게 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할머니로 보는 이의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연기를 펼친다.

나문희는 여느 작품에서나 전혀 계산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극에 이질감 없이 녹아 들었고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맞는 연기를 보여줬다. 메가폰을 잡은 김현석 감독은 “나문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하는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와 케미 역시 좋다. ‘수상한 그녀’는 나문희와 심은경의 2인 1역 연기로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나문희는 심은경과 남다른 케미를 자랑하며 중 장년층 관객은 물론 젊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이제훈과 ‘티격태격’ 케미를 자랑했다. 마치 톰과 제리 같은 관계를 보이다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화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젊은 세대와 조화를 이룰 줄 아는 나문희는 실제로도 젊은 관객층이 선호하는 배우다.

나문희만의 강렬한 페이소스 역시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로 작용됐다. 극 중 가족 없이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옥분이 혼자 라면을 먹다가 민재(이제훈)와 영재(성유빈)가 들이닥치자 웃으며 ‘파인’을 외치는 모습이 연민을 자아냈다. 또 위안부 피해자인 옥분이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 참석해 가슴 아픈 과거를 오로지 영어로 말하는 장면 역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폭력적인 묘사 없이 대사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옥분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나문희의 페이소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77세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연기 열정 역시 여러 작품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나문희는 “이 나이에도 내가 나옥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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