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초대형 투자은행(IB) 기업금융을 이용하는 고객은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소규모 기업들입니다. 담보가 있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죠. 은행이 거래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은 오히려 증권사보다 신용도가 높아 증권사를 굳이 찾아올 필요가 없어 은행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23일 증권회사 균형발전을 위한 30대 핵심과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초대형IB가 자기자본 200% 한도로 기업금융을 제공하면 은행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초대형 IB가 향후 2~3년간 기업금융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5조~6조원 수준으로 이는 현재 대형 은행사를 통한 기업의 자금지원 규모(약 600조원)의 1%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회장은 초대형 IB의 리스크 우려에 대해서도 기우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그는 “담보대출이 대부분인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이 대부분”이라며 “기업의 성장성을 판단해 투자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췄으며 리스크 관리 능력도 은행보다 뛰어나다”고 언급했다.

이날 황 회장은 연초 “증권사는 은행 등 국내 다른 금융기관보다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벼르던 주요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금투협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11개 국내외 증권사가 참여하는 업계 공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해외 증권업 관련 기관과의 미팅 등을 통해 우리나라 증권업에 대한 의견을 모아 총 100대 과제를 선출했다. 이 중 증권사 사장단 토론회(지난달 5~6일)와 기획담당임원회의(6월 13일)를 개최해 우선 추진할 30대 핵심과제를 선정했다.

이날 발표된 과제는 크게 ▲혁신성장, 일자리 창출 지원 ▲기업금융 기능 강화 ▲가계 자산관리 전문성 제고 ▲금융환경 변화 선도, 국제화(Globalization) 등 네 가지 전략 방향으로 나뉜다.

잠재력은 크지만 위험도가 높은 모험자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모 시장·전문투자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금투협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공·사모의 판단 기준을 ‘청약권유자 수’에서 ‘실제 청약자 수’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49명 이하에게 청약을 권유한 상품만 사모로 인정된다.

또, 전문성 있는 개인투자자를 전문투자자로 분류해 ‘실질적인 플레이어’를 늘리겠다는 것이 금투협의 계획이다.

5% 이상 지분이 있는 증권사가 해당 기업의 IPO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완화해 업무 연속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는 증권사가 5% 이상 지분을 가진 비상장기업의 단독 IPO를 맡을 수 없게 돼 있다. 이해상충 문제가 생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골드만삭스 등 해외 IB는 유망기업 지분에 30%, 50% 자기자본을 투자하고 돈도 빌려줘 회사가 성장하면 나스닥에 상장시키고(IPO) 투자금 회수도 한다”며 “한국은 이해상충 우려로 이 길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증권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주가를 높여 상장한 게 밝혀지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당하고 회사가 망하는 것은 물론, 최고경영자가 10년이든 100년이든 징역을 살아야 한다”면서 “처벌이 강해 감히 부정을 저지를 생각을 안 한다”고 강조했다. 자율권을 확대하는 대신,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비상장 주식(K-OTC) 양도소득세를 소액주주 대상으로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모험자본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자금 회수가 필수적인데, 높은 양도세로 개인투자자들이 비상장 시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금융 기능 강화를 위해 유상증자 발행가격 산정자율화와, 인수합병(M&A) 대상기업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도 추진하도록 했다.

이날 특히 황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법령(자본시장법 제 165조 4항, 시행령 제 176조 5항)에 따른 것이었지만 상식과는 어긋난 결과가 나왔다”며 “미국이나 영국처럼 기업 자율에 맡기고 이사회에서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개인투자자의 비상장기업 거래에 대한 양도세 면제, 증권사 해외 진출을 위한 건전성 규제 완화와 해외 현지법인 신용공여 허용·외국환 업무 확대 등도 개선 과제로 선정됐다.

가계 자산관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목적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도입, 가계대출채권 구조화 등이 추진된다.

핀테크 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을 원칙 중심 규제로 전환하고, 정보교류차단장치(차이니즈 월)를 완화하는 한편 증권사 레버리지 비율 규제를 은행 수준 또는 미국 수준으로 합리화하는 것도 추진 과제에 올랐다.

황 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성장’, ‘일자리중심 경제’와 방향이 같은 모험자본 공급과 관련된 부분을 우선적으로 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며 “금융환경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자본시장법 규제체계를 원칙중심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원칙중심규제란 법률에 원칙만을 기술하고 원칙준수는 증권회사의 자율규제·내부통제 등에 맡기되, 엄중한 사후 결과책임을 부과하는 규제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황 회장은 증권업이 규제산업이어서 결국 국회나 금융당국의 허락이 필요한거 아니냐는 지적에 “과제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공론의 장에 올렸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내용을 발표한다는 것은 금융당국과 이미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회장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게 추진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하든 새로운 회장이 하든 3년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5년 안에만 대부분 과제를 해결해도 한국의 증권사 모습은 지금과는 다르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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