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지엠은 철수할 명분을 충분히 갖췄다. 2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 유럽 GM 철수로 급감한 수출, 포화상태의 내수 시장. 인근에 있는 중국법인은 급부상하면서 한국지엠의 위상을 위협하는 중이다.

한스경제 산업부 기자

하지만 한국지엠은 단 한번도 철수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몇년간 철수설이 꼬리를 물었음에도 한국지엠은 오히려 다양한 경영 쇄신을 이어가며 정상화에 주력했다. 작년에는 내수 점유율 9.9%라는 역대 최대 성적을 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철수를 결정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GM에서 한국지엠은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소형차 개발·생산 능력뿐 아니라, GM에서 두번째로 큰 디자인센터에서는 볼트EV 등 GM의 미래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내수 시장에서 비중을 늘릴 가능성도 아직 충분하다.

한국지엠은 이 같은 상황을 이해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식적으로는 한국지엠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공공연히 설명했고, 임팔라와 신형 말리부·크루즈를 발빠르게 들여오는 등 신차 도입에도 힘썼다. 최근에는 노후화한 RV 라인업을 새로 개편하는 안도 긍정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한국지엠 철수설은 끊이지 않았다. 본사로부터 빌린 5.3% 이자의 채무, 높은 매출원가 등을 근거로 한국지엠이 철수를 위해 고의적인 부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잇따랐다.

지분 17%를 보유한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이 주주감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 올해 말부터 지분 매각을 할 수 있게된 점 등을 들어 한국지엠 철수설에 대한 추측성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부임 2개월도 채 안된 카허 카젬 사장이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카젬 사장은 “철수에 대해 Yes or No로 답하라”는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양자택일은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나 필요하다. 'No'라고 대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지엠에서 디자인한 GM의 글로벌 전략 차종인 볼트EV. 한국지엠 제공

카젬 사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철수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억측만 확대됐다.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Yes'로 등떠미는 상황으로 인식할만 하다. 실제로 철수설은 오히려 철수 명분을 키웠다. 판매현장에서는 차량 구매나 문의가 급감했음을 호소하고 있다. 신차 도입이 늦춰지는 데에도 이같은 악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마치 권태기에 빠진 연인같다. 관계를 지속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지엠과, 헤어질거냐 말거냐 다그치는 한국 사회다. 한국지엠에 큰 호재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별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큐피트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23일 이 회장은 한국지엠 철수를 걱정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경영개선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제는 지켜볼 때다. 카젬 사장은 앞으로 자료 제출에 적극 나서겠다며, 철수설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비온 뒤에 흙은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GM은 한국 자동차 산업 침체기를, 한국지엠은 GM의 부도 위기를 헤쳐나가게 해준 사이다. 한국지엠 행사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자주 모습을 보였던 것도 이런 끈끈함 때문이다. 모쪼록 권태기를 완만히 마무리하고 더 단단한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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