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대만)=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태극마크의 무게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다.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국가대표로 나서 최고의 성적을 위해 뛰어야 한다. 잘했을 땐 많은 칭찬과 응원을 받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은 날카롭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프리미어12 조별 예선 라운드를 치르기 위해 지난 9일 대만에 입국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8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0-5로 무기력하게 패했고, 그 충격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대만에서 4차례 조별라운드를 치르고 8강전에서 쿠바를 7-2로 물리치면서 사기도 한껏 올라갔다. 승리를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킨 부분도 있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물심양면으로 후배들을 챙긴 선배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팀 주장 정근우(33·한화)와 이대호(33·소프트뱅크)는 일본전에서 패한 뒤 "대회가 끝난 게 아니다"며 선수단의 분위기를 추슬렀다. 특히 이대호는 식당에서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통 크게 계산을 대신 해주며 멋진 선배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내야수 김재호(30·두산)는 "대만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 거의 매일 한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이대호 선배가 계셔 밥 값을 대신 내주셨다"며 "며칠 전에는 세 테이블 정도가 다 우리 대표팀이었는데 대호 선배가 그 때도 다 계산을 하고 가셨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포수 강민호(30·롯데) 역시 "이제 선배가 되니까 밥도 많이 사게 되더라"며 "그래도 대호 선배만큼은 아니다. 식당에서 이대호 선배를 만나면 계산을 다 해주신다"고 말했다. 선배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맛 있는 밥을 챙겨먹은 선수들은 야구장에서도 더욱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지난 16일 쿠바와의 8강전을 앞두고는 야수가 직접 배팅볼을 던지는 흔치 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특히 국제 대회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내야수 오재원(30·두산)은 직접 나서서 배팅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배팅 연습을 끝내야 한다는 진행 요원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나성범(26·NC)과 강민호, 허경민(25·두산) 등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며 동료들의 타격 훈련을 도왔다. 한껏 땀을 흘린 오재원은 "배팅볼 투수들이 힘들어 해 던져줬다"고 설명했다. 오재원의 배팅볼을 받아친 허경민은 "볼이 좋았다"며 미소지었다. 긴장된 8강전을 앞두고도 대표팀의 분위기가 조금은 편안하게 풀릴 수 있었다.

후배들이 보고 자라나갈 길도 선배가 보여준다. 어린 선수에겐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모인 '국가대표팀'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투수 심창민(22·삼성)은 "다 잘 하시는 선배이시지 않나. 서로 잘 알고 있는 우리 팀과는 또 다르게 각양각색의 선수들이 모여 성향이나 스타일도 다 다르다"며 "같은 언더핸드 투수인 (정)대현 형이나 (우)규민 형에게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올 정규시즌에서 152⅔이닝을 던지며 17개의 볼넷만 내준 우규민(30·LG)의 칼 같은 제구력은 심창민이 꼭 얻고 싶은 부분이다. 심창민은 "규민이 형이 알려준 대로 연습을 하고 있다"며 "내년 캠프에서도 계속 연습을 해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타이베이(대만)=김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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