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로드맵] ‘더치페이 문화’ 그래도 정은 남겨두자
[권상희의 컬쳐 로드맵] ‘더치페이 문화’ 그래도 정은 남겨두자
  • 편집자
  • 승인 2018.04.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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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보내면 돼?”

점심식사를 하고 1/n 계산을 한다. 2030세대에게는 흔한 모습인 이른바 ‘N빵’. 간편 계좌이체 앱을 이용해 각자 몫을 정산한다. 서로 지갑이 얇기에 작은 금액이라도 나눠 내는 것이 정감 있다고 말하는 세대다. “내가 낼게”가 더 익숙한 기성세대와는 ‘정’의 개념부터가 다르다. 각자에게 부담주지 않기가 젊은 세대가 말하는 ‘정’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김영란법’ 시행이후 생활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는 ‘더치페이문화’의 모습이다.

얼마 전 20대 대학생 8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바람직한 데이트 비용 분담률을 5:5로 꼽은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58.4%라고 한다. 또 결혼할 때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미혼 남성의 79%, 미혼 여성의 72.3%가 반대를 표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 조사’)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던 고정관념이 더치페이 문화로 인해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각자의 몫은 각자가 해결하기, 더치페이를 합리적인 문화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친구들 또는 동료들 간의 모임에서 더치페이 하는 것과 데이트, 결혼 비용에서의 그것이 같은 개념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후자의 경우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합된 만남이다. 서로 경제적인 환경이 같다면 편리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판이하게 다르다면 5:5라는 합리적인 비율이 누군가에게는 큰 부담일지도 모른다. SNS상에서 더치페이와 관련해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나눠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여자는 꾸며야 하니까 데이트 비용은 당연히 남자가 내야죠’ ‘돈 없으면 연애하지 마세요’ 등의 인터넷 댓글은 감성 제로에 이성까지 결여돼 있다. 난 사랑타령을 하는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라면 조금 더 가진 자가 조금 더 쓰면 되는 거 아닐까. 여기에 ‘연장자 또는 남자가 무조건’이라는 시대 퇴행적 단서 역시 불필요하다.

한 블로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인 블로거와 함께 일하는 팀장님, 사장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더치페이가 유행이라는 이유로 1/n 계산을 했단다. 어쩔 수 없이 오늘 번 돈과 지출 비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데 맘이 상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모습의 더치페이가 합리적인 걸까?

부끄럽게도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 27위다. 밥 얻어먹기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결과가 반영된 순위라고 본다. 그래서 탄생한 ‘김영란법’ 아니겠는가. 부패방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방법이 ‘더치페이’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각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시행되는 무조건적인 더치페이문화는 우리 고유의 정서인 ‘정’마저 싹둑 잘라 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더치페이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대접’ ‘한턱내기’를 의미한다. 대접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데서 부패는 생겨난다. 그러나 베풀고 사는 삶에서는 ‘정’이 생겨난다. 우리의 더치페이 문화, 베풀고 사는 ‘정’만은 남겨두기를. 그러기를 바란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