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천년 신비 간직한 원시의 숲을 걷다
▲ 고즈넉한 비자림 산책로. 한국관광공사 제공

볕이 조금씩 강해질수록 시원한 숲 그늘 생각난다. 제주의 숲은 어수선하다. 나무,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범벅이 돼 원시의 것처럼 보인다. 이런 숲을 제주 방언으로 ‘곶자왈’이라고 한다. 형성 과정은 이렇다. 화산이 분출한 후 용암이 흐르다 굳어 쪼개지며 크고 작은 암석이 됐다. 이를 비집고 식물들이 자라 숲을 이뤘다. 난대식물과 한대식물이 함께 자라는 것이 곶자왈이 특징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숲, 비자림은 구좌읍 평대리에 있다. 약 44만m²의 면적에 평균 수령 500~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생한다. 단일 수종 나무들로 이뤄진, 이 정도 규모의 숲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발 들이면 오래된 나무들이 만들어 낸 숲의 경건함에 숨이 멎을 듯하다. 울창하고 엄숙하며, 바람 부는 대로 자란 가지들이 신비롭다. 딱 5분만 걸으면 문명과 단절되고 퍽퍽한 일상도 시나브로 잊힌다.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는 나무다. 잎은 바늘모양처럼 생겼다. 이것이 한자 ‘비(榧)’자를 닮았다고 해 비자나무다.
비자나무는 조선시대에는 귤, 말, 마른 전복과 함께 임금에게 바치던 제주도의 진상품이었다. 이러니 나라에서도 비자나무를 아꼈다. 비자림에 표를 세워 벌채와 경작을 금했단다.
실제로 비자나무는 예부터 유용하게 쓰였다. 열매는 강장 장수의 약으로, 특히 구충제로 널리 사용됐다. 오줌싸개에게 비자가루를 먹이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씨는 짜서 기름으로 썼다. 독특한 향을 지닌 잎은 모기나 해충을 쫓는데 이용됐다. 재질이 치밀하고 탄력이 뛰어난 목재는 부드럽고 가공하기 쉬워 가구를 만드는데 주로 쓰였다.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고가로 거래됐다.
숲에는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빼곡하다. 비자나무는 더디 자란다. 1년에 고작 1.5㎝ 정도밖에 안 큰다. 그러나 다 자라면 높이가 25m에 이르고 몸통의 둘레는 두 아름이 넘는다. 아름드리 비자나무를 대하면 세월의 무게만큼 묵직한 경외감이 절로 느껴진다. 숲 안쪽에 있는 ‘새천년 비자나무’는 수령이 무려 820년이 넘었다. 이 숲에서 가장 오래 됐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 말고도 희귀 난과식물, 수피에 붙어 자라는 착생식물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두 나무가 붙어 자라는 비자나무 연리목도 볼거리다.
탐방로(약 1.8km)와 산책로(약 1km)가 잘 갖춰져 있다. 산책로는 탐방로에 비해 늦게 개방된 덕에 주변 분위기는 더욱 천연하다. 더 크고 웅장한 나무들이 많다. 천연한 원시의 숲에서 맞는 봄이 더 찬란하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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