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계가 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기존 4대 투자배급사(CJ E&M, 롯데, 쇼박스, NEW) 중심으로 흘러간 영화계가 미국·중국 자본의 유입과 신생 투자배급사들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잇따른 신생 투자배급사의 등장에 그 동안 재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소규모의 영화제작사 역시 기를 펼 전망이다. 다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국내에서 수익을 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업계의 분석도 따른다.

'내부자들' 포스터./쇼박스 제공.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가 중국 자본을 받고 설립한 콘텐츠 제작·배급업체 메리크리스마스는 업계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메리크리스마스의 모회사는 중국 화이브라더스가 설립한 화이브라더스코리아다. 화이브라더스코리아는 메리크리스마스 지분 75%(30만주)를 95억 원에 취득했다. ‘내부자들’(2015년) ‘검사외전’(2016년) ‘택시운전사’(2017년) 등 흥행으로 쇼박스에서 선구안을 인정받은 유 대표와 ‘차이나 머니’가 만나 행사할 영향력은 영화계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변화의 바람은 할리우드 메이저스튜디오에도 불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가 20세기폭스의 모회사 21세기폭스의 주요 부문을 인수키로 한 가운데 폭스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는 ‘런닝맨’(2012년)을 시작으로 ‘슬로우 비디오’(2014년) ‘나의 절친 악당들’(2015년) ‘곡성’(2016년) ‘대립군’(2017년) 등을 제작했다. 그러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곡성’이 유일한데다 현재 한국지사 대표 자리는 공석이다.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만큼 한국영화 제작중단설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이십세기폭스는 “사실 무근이다. 현재 기획개발중인 작품도 있다”며 선을 그었다.

국내외적으로 투자배급시장의 변화가 불고 있는 가운데 중·소규모 회사들의 약진 역시 돋보일 전망이다.

지난 해 688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범죄도시’의 메인 투자배급사 키위미디어그룹은 올해에도 ‘악인전’ ‘유체이탈자’ ‘바디스내치’ ‘헝그리’ 등의 영화를 준비 중이다. 제약회사 셀트리온 역시 자회사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로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비 주연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을 제작했으며 배급업을 계획하고 있다.

'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제공.

4대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신생투자배급사들의 연이은 등장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플랫폼이 극장이 메인이 아닌 시대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원작 오리지널 콘텐츠가 메인인 세상”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디어가 융합되며 확장되는 시점에 투자배급시장 역시 다양한 방식이 생긴 것이다. 각자 배급사가 갖고 있는 성격, 특징 살려서 고유한 콘텐츠를 가져가야 하는 시대다. 대규모 자본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늘 투자배급사에게 ‘선택’받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투자배급시장 확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김복남 살인사건’(2010년) ‘더 웹툰 예고살인’(2013년) ‘오뉴월’(2016년) 등 중·저예산 영화를 제작한 영화제작사 필마픽쳐스 한만택 대표는 “일단은 메인투자배급 유무를 떠나 기획개발투자만 해준다 해도 반갑다”고 했다. 이어 “다양한 콘텐츠 확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해 주는 돈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에서 제작자 입장에서는 단비 같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배급시장이 점점 확장되며 경쟁과 수익 창출 역시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빈익빈부익부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스타 감독에게만 투자하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며 “모든 배급사들이 국내에서만 수익을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써니' 포스터./CJ E&M 제공.

CJ E&M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영역을 확장했다. 베트남에서 현지 제작사와 만든 회사를 통해 국내영화가 원작인 작품을 리메이크로 만들며 관객을 모아 성공했다. ‘써니’를 베트남판으로 리메이크한 ‘고고 시스터즈’는 누적 박스오피스 매출이 360만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베트남 로컬 영화 5위에 올랐다.

롯데쇼핑 내 극장산업 부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독립법인 롯데컬처웍스로 새롭게 출범했다. 멀티플렉스 디지털 혁신,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 신규 사업 부문을 내세움과 동시에 해외 진출에도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신생 투자배급사들이 틈새시장을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CJ 계열 제작사 JK필름 길영민 대표는 “기존의 4대 배급사는 상업적인 작품에 더욱 투자를 할 것”이라며 “ 비상업적인 혹은 예술적인 색채를 띤 작품들이 신생 배급사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20억~30억대 제작비를 들인 중·저예산 영화가 좀 더 설 자리를 얻을 것이다.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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