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손예진에게 JTBC 종영극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는 ‘화양연화’ 같았다. 극중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순간이 참 슬프게 느껴졌다”고 했다. 20대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느덧 데뷔 20년차,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멜로 여신’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예쁜누나’를 통해 팬들이 ‘멜로를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꼈단다. 지금도 연기 열정이 식을까봐 겁난다고.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예쁜누나’가 사랑 받은 비결은.

“초반에 준희랑 진아가 엄청 설레면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다. 극장에서 영화보고 차에서 데이트 하고 다들 한 번쯤 해 본 것 아니냐. 특별한 데이트가 없었다. 집 앞, 엘리베이터, 회사 옥상 등 다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실제로 30대들이 다 그렇게 연애 하니까. 많이 공감을 받은 것 같다.”

-후반부 너무 현실적이라는 비판 받았는데.

“우리 삶이 너무 아프니까 드라마,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잊고 싶어 하지 않냐. 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고. ‘예쁜누나’는 15회에서 3년이 튀면서 이야기가 빨리 전개됐다. 다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끝까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더라. 진아와 준희가 결국 끝난 걸 짐작하지만 그 순간 끝인 걸 모르고 끝나지 않았냐. 너무 현실적이고, 다른 드라마에서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랑해도 어느 순간 끝나는 지점이 있지 않냐. ‘우리 오늘 헤어져’ 한다고 사랑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균열이 생기니까. 그 지점을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나도 감독님한테 ‘그냥 미국 가면 안 돼요?’라고 물어봤다. 사랑해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갈 수는 없었을 것 같더라. 사랑하고 사랑 안 하고의 차이가 아닌 것 같다.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으니까. 진아랑 준희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거까지 보고 싶었지만, 진아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끝난 거다. 진아가 남들이 하는 결혼해서 잘 살았을지, 준희와 만나다가 깨졌을지는 모르겠다(웃음).”

-결말은 만족하나.

“다들 비극적인 결말 보다 해피엔딩을 바라지 않냐. 원래 대본에는 ‘진아와 준희가 제주도에서 다시 만난다’ ‘바닷가를 걷는다’ ‘두 사람이 얘기를 한다’ ‘진아가 환히 웃는다’ 4문장뿐이었다. 뜨뜻미지근하게 끝나는 게 아니라 진아와 준희가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키스를 해야 된다’고 얘기했다(웃음). 결국 키스를 했는데 풀 샷으로 잡혀서 잘 안 보였다. 시청자들에게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감독님이 마지막 장면에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어 달라고 하더라. 너무 추워서 니트를 입었는데 ‘벗었으면 좋겠다’고 해 반팔 티만 입었다. ‘싱그러워 보인다’고 좋아했다. 두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지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라.”

-멜로 작품 항상 반응 좋은데.

“정말 모르겠다.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특히 멜로를 좋아해 준다는 걸 이번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하면서 깨달았다. 정통멜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이후 오랜만이었는데, ‘(멜로 여신이) 돌아왔다’는 표현까지 쓸 줄은 몰랐다.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멜로 연기 잘해요’ ‘저만의 노하우가 있어요’라고 하기 어렵다. ‘예쁜누나’에서도 진아 인생의 큰 틀을 보고 연기했지 멜로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비교해면.

“그 때는 틀 안에 갇혀서 감정을 극대화해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다. 슬픈 생각 엄청 하고, 눈물 흘리고…. 떠나보낸 뒤에 울고 재회해서 ‘이 아픔 또 느껴야 하나?’ 싶더라.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고,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랑의 감정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훨씬 범위가 넓어졌다. ‘사랑이 극적이고 대단한 감정이 아니구나’ 싶더라. 연기로도 자연스러운 사랑을 추구한다. ‘예쁜누나’는 그런 부분이 맞아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냐. 사실 내가 추구하는 바와 작품 의도가 일치하기 쉽지 않다. 내게 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베스트를 수동적으로 고르는데, ‘예쁜누나’는 그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가 떠올랐다고.

“감독님이 ‘진아와 준희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고 했는데, 나 역시 공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인데 참 슬프더라. 그래서 아름다운 그 순간이 아름답게만 비쳐지지 않았다. 20대 땐 느끼지 못했을 감정인데 이젠 나도 그걸 아는 나이가 돼 버린 거다. 그걸 알게 되니까 짠했다.”

-20대 때와 달라진 점은.

“매순간 다르고 매순간 큰 의미가 있다. 계속 바뀌고 있다.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 처음 주인공이 됐을 때, 처음 30대가 됐을 때 다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빨리 서른네 살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때 선망한 선배들의 나이가 다 서른 네 살이었다. 이제는 그 나이도 지났는데, 이번 작품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또 달라졌다. 지금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열정이 식으면 어떡하나?’ 계속 걱정한다. 나중에 잊히면 상실감이 크겠지만, 세신만 나와도 그 안에서 감동을 주고 싶다.”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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