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재판 걸어 만기 연장...느슨한 관리·감독 '죽은 채권' 부활에 한 몫

[한국스포츠경제=양인정 기자] 대부업체들이 만기시효가 끝난 '죽은 채권'으로 채무자들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사례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체들은  시효만료된 채권에 대해 재판으로 만기를 연장해가며 채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4일 전남금융복지상담센터에 따르면 한 대부업체는 이미 2012년에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연장해 채무자의 급여를 압류했다가 뒤늦게 이를 해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광역시 남구 거주하는 김모씨(여·50)는 지난달 초 갑자기 급여가 압류당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김씨는 “급작스러운 압류에 당황한 것은 물론 회사로부터 인사상 불이익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남금융복지상담센터가 김씨의 위임을 받아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K대부업체가 이미 2012년에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송으로 연장, 이를 근거로 김씨의 급여에 압류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기 지난 채권으로 급여 압류

김씨는 지난 2002년 지인의 대출에 보증을 선 것과 관련해 민사재판을 받았다. 재판에 이긴 당시 채권 금융회사는 판결이 확정된 채무를 10년 동안 강제집행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채권자는 그이후 10년 동안 아무런 집행조치를 하지 않았고 2012년에 시효가 만료돼 채권은 소멸했다.

그런데 김씨의 최초 채권 금융회사는 시효가 지난 채권을 K대부업체에 팔았다. K대부업체는 이 채권을 가지고 지난 1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시효연장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김씨도 모르는 사이에 채권자 승소판결로 확정됐다. 김씨의 주소가 정확하지 않아 ‘공시송달’절차로 재판이 끝난 것. 법원의 판결로 채권은 다시 10년으로 연장되고 K대부업체는 이 판결을 근거로 김씨의 급여를 압류했다.

K대부업체가 청구한 금액은 총 2949만원. 김씨가 2002년에 보증을 선 원금 683만원의 4배가 넘는 거액이다.

전남금융복지상담센터에 따르면 김씨와 같이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연장해 강제집행 당하는 사례가 한 달 평균 15건에서 20건에 이른다.

금융감독원 '금융권 특수채권 현황' 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사(증권업, 대부업 제외)의 5년 이상 연체된 채권 규모는 20조1542억원(원금 11조9660억원, 이자 8조18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1회 이상 소멸시효가 연장된 채권이 총 8조2085억원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채권 10개 중 4개가 소멸시효 5년을 채운 후에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느슨한 감독...대부업체 아랑곳 안해

죽은 채권을 소송으로 부활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것은 채무자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영원히 채권자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시효완성 채권은 이미 채권자가 권리행사를 포기한 채권이다. 그런데도 이 채권을 다시 매각하는 행위와 채권집행을 위해 소송에 나선 것은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로 비판받아 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죽은 채권'의 부활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월 관련 법률이 본회를 통과될 때까지 죽은 채권의 매각을 금지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에 제9조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대출채권을 직접 추심하거나 매각할 수 없다. 매각 이후에라도 이런 매각제한대상 채권으로 확인되면 도로 사와야(환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김씨와 같이 여전히 죽은 채권의 부활로 채무자의 경제활동이 제약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관리 감독은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대부업체의 수가 8000곳이 넘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단속인력의 부족 등으로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면서도 “대부업 협회 등에 주기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향후에 이런 사례가 있다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 달라”며 “민원을 통해 해당 업체에 경고 등 지도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채무자 대응, 실제론 쉽지 않아

죽은 채권에 대한 채무자의 대응도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백진 전남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사는 “채권자가 죽은 채권으로 소송이 제기하면 채무자는 법원에 출석해 시효항변을 하거나 김씨와 같이 압류를 당한 뒤 소송 사실을 안 경우는 ‘추완항소’를 해야 한다”며 “어느 경우나 채무자가 법적 비용을 들여 복잡한 법률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추완항소는 공시송달로 판결된 재판에 대해 채무자가 뒤늦게 재판사실을 알게 된 경우 제기하는 불복절차다.

백 상담사는 이어 “대부업체 등이 이렇게 죽은 채권을 부활시키는 것은 채무자의 법적 대응이 어렵다는 것은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담센터는 K대부업체의 압류신청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백 상담사는 “대부업체가 채무자의 직장을 어떻게 알고 급여 압류를 한 것인지 조사 중”이라며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고발조치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권이 있다고 채무자의 직장을 조회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백 상담사의 설명이다.

김씨의 위임을 받은 전남금융복지상담센터가 K대부업체에 대해 시효완성 채권의 소송 경위를 파악하고 나서자 K대부업체는 압류를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K대부업체는 해당 사실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담당 지점에 사실을 확인 해 본다”며 별다른 회신을 하지 않았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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