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도입 6개월 지났지만 여전히 빅4 거래소만 시행 중
"정부 '낙인'에 거래소만 피해 본다" 업계 불만 속출
가상화폐 거래실명제가 지난 1월 30일 시행된 지 6개월여가 지났지만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 거래량만 급감하며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사진=pxhere, madpixel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거래실명제를 도입한 지 반 년이 지난 가운데 정책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금세탁과 탈세 방지를 위해 도입한 가상화폐 거래실명제가 오히려 거래소 거래량만 떨어뜨리고 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거래실명제를 도입 중인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이른바 ‘빅4’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거래량 기준으로 전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중 1,2위를 다투던 빗썸과 업비트는 최근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힐스에 따르면 이날 현재 빗썸은 12위, 업비트는 21위에 올랐다. 코인원과 코빗은 각각 52위와 60위에 그쳤다. 거래실명제 이전인 1월 29일 당시 업비트는 1위, 빗썸은 3위, 코인원과 코빗이 각각 15위, 24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거래량이 급감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서 이들 거래소의 점유율 역시 크게 감소했다. 1월 29일만 해도 빗썸의 시장 점유율은 10.73%, 업비트는 12.88%에 육박했으나 이날 현재 점유율은 빗썸이 1.54%, 업비트는 0.77%에 그쳤다.

그사이 홍콩과 대만에 기반을 둔 중국계 거래소들의 순위는 크게 상승했다. 현재 코인힐스랭킹 10위권 거래소 중 중국계 거래소는 1위에 오른 비트포렉스(Bitforex)를 비롯해 바이낸스(Binance), 오케이엑스(OKEx), 제트비닷컴(ZB.COM), 후오비(Huobi), 드래고넥스(DragonEx) 등 6개에 이른다.

◆ 거래실명제 도입 반 년…여전히 ‘빅4’ 거래소만 거래실명제 실행 중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30일을 기해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도입했다. 당시 거래실명제를 도입한 4개 거래소는 최근 시중은행과 재계약까지 끝내며 정부 기준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기준을 충족한 거래소는 거래량이 급감한 반면 이를 도입하지 않은 거래소들도 영업을 정상적으로 계속하고 있어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 중 거래실명제를 도입한 곳은 첫 도입 당시 지정된 4개 거래소 뿐이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강화하면서 부담이 커진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확대 도입을 꺼려왔기 때문이다. 당국의 스탠스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에 계약을 맺은 빅4 거래소들도 재계약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최근 해킹 사태를 겪은 빗썸은 농협은행과 최초 재계약에 실패했다가 협상 끝에 지난 28일 극적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에선 정책 실효성에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거래실명제를 도입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거래실명제로 전환을 모두 마쳤지만 그 과정에서 이용자 불편만 가중시켰을 뿐 특별히 달라진 점을 알 수 없다”며 “기존에 법인계좌나 가상계좌로 이용하던 방식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 거래실명제, 자금세탁 방지 효과 있나...커지는 의구심

거래실명제 도입 당시 정부는 법인계좌 형태의 집금계좌, 소위 ‘벌집계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집금계좌는 일반 법인계좌를 발급받아 운영하는 방식으로 실명계좌가 아니기 때문에 자금 세탁이나 탈세에 악용될 수 있으며 해킹에도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6개월동안 거래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머지 거래소들은 여전히 집금계좌 형태로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집금계좌는 인터넷 거래 시 이용하는 ‘가상계좌’와 비슷한 형태로 시중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법인계좌를 내어주면 거래소에서 해당 계좌를 이용해 가상계좌를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집금계좌 역시 실명계좌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미 대부분 전자상거래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던 형태가 유독 가상화폐 거래소에게만 불법이자 편법이라고 하는건 잘못된 낙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를 두고 헌법소원까지 진행 중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안국의 정희찬 변호사는 거래실명제 등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는 ‘위헌’이라며 소를 제기했고 현재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는 “정부 대책에서 ‘벌집계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가상화폐 거래소에 초법적인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굳이 실명확인 가상계좌가 아니더라도 이미 금융실명법이 적용 중인 우리나라에선 기존의 가상계좌 역시 실명계좌의 일종이다. 기존 방법으로도 자금 추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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