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에서 복직까지...지난했던 9년세월
쌍용차, 해고에서 복직까지...지난했던 9년세월
  • 김재웅 기자
  • 승인 2018.09.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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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구조조정…노조 반발했다가 공권력에 제압
2015년 노사 해고자 단계적 복직 합의…2017년 복직 지연으로 노조 투쟁 재계
최종식 사장 분향소 전격 방문…전원 복직 합의

[한스경제=김재웅 기자] 쌍용차 사태는 2009년 시작됐다. 노조가 1월 9일 법정관리 신청 후 4월 발표된 구조조정안에 반발해 파업을 가결하면서다. 여기에는 2646명을 구조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쌍용차는 5월 2405명을 정리해고하는 계획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노조는 5월 21일 총파업에 돌입했고, 사측은 직장폐쇄 후 6월 8일 976명을 정리해고 한 후 노조와 대화 불가를 선언했다. ‘인력구조조정 최종안’도 발표했다.

노조는 거세게 저항하면서 노조원 1명이 폭력행위로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6월 30일에는 경찰이 ‘쌍용차 사태’ 특별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후부터 공권력이 본격 투입됐다. 경찰이 노조 강제 해산 방침을 발표하고 경찰력 투입을 시작한 것. 8월 4일과 5일에는 경찰 특공대까지 투입돼 노조를 진압했다.

최근 이 과정에 청와대와 기무사 등 개입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이 청와대 승인을 받아 헬기 등을 동원하는 작전을 수행했고,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이 댓글 조작에도 나섰다. 기무사는 공장에 진입해 노조원들을 사찰했다.

결국 노사대표는 8월 6일 마지막 협상을 타결했다. 무급휴직 48%, 희망퇴직 52%다. 노조원 100여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이듬해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됐고, 2011년 기업회생절차를 종료했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자 156명은 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패소 판결을 받고 4월 5일에는 대한문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다. 11월20일에는 송전탑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쌍용차 노사는 2013년 1월 10일 무급휴직자 455명을 전원복직하기로 합의했지만, 희망퇴직자 1904명과 정리해고자 159명은 제외했다. 해고자들은 4월 4일에 분향소 강제 철거를 당하기도 했다.

해고자들은 2014년 2월 7일 해고무효소송 항소심 2심에서 승소했지만, 11월 13일에는 대법원으로부터 원심 파기 환송을 당하기도 했다. 2015년 9월 16일에는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33억원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문제 해결 실마리는 2015년 말께 시작됐다. 12월 30일 노사가 해고자 단계적 복직에 합의하면서다. 연초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노조와 만나면서 대화가 시작됐으며, 결국 합의에 성공했다.

14일 기자회견 후 최종식 사장이 노조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기자회견 후 최종식 사장이 노조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복직은 좀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쌍용차가 티볼리로 판매량을 크게 늘리긴 했지만, 해외 시장 문제 등으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017년 11월 24일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개시했다.

2018년 들어서는 6월 27일 김주중 조합원이 해고자 중 30번째로 사망하면서, 7월 3일 대한문 분향소가 다시 설치됐다. 8월 7일에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가 5년여 만에 재결성됐다.

최종식 사장은 9월 13일 대한문 분향소를 방문해 노조에 손을 내밀었고 노·노·사·정 4자 간 해고자 복직 교섭을 벌였다.

마침내 쌍용차는 9월 14일 해고자 119명을 전원 복직하는 합의안을 발표하면서 9년여를 끌어온 쌍용차 사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은 과제는 있다.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사측은 제기했던 보상 소송을 취하한 상태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와 정계 등에서는 경찰에 소송 취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경찰은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