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험지 등판 능력 '명불허전'…차체 흔들려도 안전
연비 향상 등 온로드 능력에 집중…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발전
위엄 넘치던 랭글러, 지나치게 부드러워져…온로드 쓰기에도 애매한 성능

[한스경제=김재웅 기자] 랭글러는 지프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미국 자동차 브랜드 지프가 아닌, SUV의 원형인 ‘지프차’다. 세계 2차대전 전장을 누비던 윌리스의 정통 후계자. SUV 역사에서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존재다.

랭글러가 11년만에 완전히 새로 돌아왔다. 2017년 LA모터쇼에서 발표된 JL 플랫폼 기반 ‘올 뉴 랭글러’다.

랭글러와 함께 강원도 평창 산골을 누볐다. 개울과 계곡, 가파른 돌길을 두루 지났다. 원조 SUV다운 막강한 등판 능력. 온로드 주행 효율성도 높이면서 새로운 SUV들과도 맞설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지프 올 뉴 랭글러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파블로 루쏘 FCA 사장. 지프 제공

◆ “내가 바로 진짜 지프차다”

랭글러는 산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꿈틀댔다. 4륜 구동 기술인 4x4는 훨씬 더 똘똘해졌다.

시승차는 셀렉트랙 풀타임 4x4가 장착된 사하라 모델. 지형에 따라 선택봉을 밀었다 당겼다가 하면서 4륜구동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45도를 넘는 경사를 만나서 4륜 로우 모드를 선택했다. 차체가 묵직해지는 느낌, 가속 페달을 밟으니 2t(톤)짜리 차가 부드럽게 경사를 타고 올라간다.

크롤비가 무려 77:1이다. 저단 기어에서 얼마나 토크를 강력하게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치로, 평범한 SUV의 2배나 높다.

주행 모드는 자동이다. 돌이나 모래, 진흙 등 환경에 따라 스스로 토크 배분 스타일을 바꾼다.

랭글러는 여전한 등판과 도하 능력을 갖고 있다. 지프 제공

전자 제어 전복 방지(ERM), 내리막 주행 제어 장치(HDC)도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이다. ERM은 한쪽 바퀴가 심하게 들리면 토크를 조정해 자세를 바로잡아준다. HDC는 내리막길에서는 자칫 미끄러져내리지 않도록 엔진브레이크 등을 이용해 속도를 유지해준다.

이 덕분에 랭글러는 진입각 최대 36도, 램프각 20.8도, 이탈각 31.4도 까지 무리없이 달릴 수 있다. 오프로드 왕좌임을 분명하게 증명해냈다.

조향감은 다른 SUV와는 차원이 다르다. ‘랙 앤 피니언’도 아닌 볼스크류 방식을 썼다. 노면 충격을 최소화할뿐 아니라,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게 해준다. 유지비용이 다소 높을 수 있겠지만, 차량 완성도를 훨씬 높였다는 것이 지프 측 설명이다.

도하능력도 더 깊어졌다. 76.2cm 개울도 무리없이 건넌다. 최저지상고도 39cm 높아진 269cm로, 견인 능력도 2495kg에 다한다.

랭글러는 SUV 역사를 만들었다. 지프 제공

◆ 이제는 온로드도 접수한다.

이번 랭글러는 오프로드 능력보다 온로드 활용성에 더 신경썼다.

우선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각진 라인과 7-슬롯 그릴 등 랭글러만의 아이코닉을 그대로 살리면서, 최근 출시된 레니게이드에서 볼 수 있었던 사각 테일램프를 새로운 포인트로 넣었다.

인테리어도 제법 요즘 SUV 같아졌다. 8.4인치 터치스크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커넥트 시스템은 랭글러를 도시로 끌어와준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등을 쓸 수 있다.

올 뉴 랭글러는 내부 인테리어 수준을 높이고 연비를 높이는 등 온로드 성능 개선에 중점을 뒀다. 김재웅기자 jukoas@sporbiz.co.kr

특히 새로운 랭글러는 소음을 최소화하는 비장의 무기를 새로 넣었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시스템이다. 9개의 프리미엄 스피커에서는 고해상도 음악을 재생해준다.

문 열리는 선루프가 없는 대신, 지붕을 떼내면 된다. 돌리고 들어내면 어느새 오픈탑 지프차가 된다.

다운사이징 엔진으로 효율성도 높아졌다. V6 엔진을 2리터 4기통 터보차저로 바꿨다. 또 8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했다.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윈드실드 각도도 눕혔다.

덕분에 공인연비는 기존 모델 대비 최고 36%까지 늘었다. 루비콘은 8.3km/ℓ, 사하라와 스포츠는 9km/ℓ다. 실제로 오프로드를 넘나들어도 3~4km/ℓ 수준이 나왔다.

올 뉴 랭글러. 지프 제공

◆ 위엄 잃은 오프로더, 온로드서도 애매

객관적으로는 분명 모든 점이 좋아졌지만, 실제 랭글러 마니아들이 이를 제대로 받아드릴지는 의문이다. 지난 세대까지만 해도 묵직한 야생성을 뿜어내던 랭글러가, 이제는 잘 만들어진 첨단 문명의 합작품이 돼버렸다.

훨씬 더 강력해진 등판 능력, 하지만 스티어링 휠이나 가속페달에서는 좀처럼 힘을 느끼기 어렵다. 무미 건조한 자동차 게임처럼, 그저 임무를 완수하듯 험지를 올라갔다 내려올 뿐이다.

노이즈 캔슬러는 랭글러에 특히 어울리지 않는다. 돌을 밟고 올라서는 묵직한 휠의 느낌을 완전히 반감시켜버린다. 창문을 열고 나서야 바깥에 새소리, 빗소리가 랭글러임을 말해줬다.

온로드 성능이 다른 경쟁 모델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최고출력 272마력에 최대토크 40.8kg·m으로 강력한 힘을 내기는 하지만, 탑승감이 오프로드에 비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휘발유 1ℓ로 6km 정도밖에 달리지 못하는 것도 분명 아깝다.

오프로드에서와는 달리, 온로드에서는 별다른 주행 편의기능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 크루즈 컨트롤과 후측방 감지 기능 뿐이다. 스마트크루즈컨트롤은 물론이고 차선 이탈경보장치조차 없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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