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변동진 기자] 국내 재계 1위 기업을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가(家) 최초로 북한 평양을 방문한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단 자격을 부여받은 그는 과거로 따지면 조선통신사 격이다.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군 1호기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조선통신사는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로,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해 교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재계에서 이 부회장에게 거는 기대는 남북 경협이 현실화됐을 때 적극적인 투자일 것이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 자료를 보면 통일을 전제로 20년간 북한 인프라 건설에 드는 비용은 약 157조원, 전체 개발 금액은 약 561조원이다.

일각에서는 이 비용을 모두 정부가 퍼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재원 조달을 정책금융기관이 민간에게 50% 이상 대출, 민간 투자 30%, 북한 자체 창출 20%, 해외 원조 3%로 책정했다. 정부 출자는 5~7.5%에 불과하다.

물론 남북 관계에 따라 사업 지속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리스크는 있지만, 사실상 기업에게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 열리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이 부회장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이른바 ‘사면’ 프레임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형사재판을 받고 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후 이듬해인 2008년 8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다.

대법원 최종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 역시 두 회장과 같은 코스를 밟는 것 아니냐는 게 ‘사면’ 프레임을 씌우려는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7월 초 인도에서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일자리 창출’을 부탁받은 점, 한 달 뒤 경기 평택 삼성전자 공장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나는 등 정부와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총수 일가 세금 추징과 관련해 선처를 바라고 동행하는 것인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중대한 문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불참은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부회장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기 전까지 죄인이 아니다.

아울러 제 아무리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입법·사법·행정’ 이른바 삼권이 분리된 체제에서 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만들었겠는가. 우리는 절대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감방에서 생활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원동력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할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와 경제 발전을 위해 적진으로 뛰어든 정부, 총수들에게 ‘사면’ 프레임은 말 그대로 재 뿌리기 수준에 불과하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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