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빗썸·업비트·코인원, 국내 상위권 가상화폐 거래소 잇딴 동남아 行
"한국 규제 미흡하고 육성방안도 없어"...스위스·싱가포르로 떠나는 기업들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규제와 관련법안이 미비한 한국을 떠나 인프라가 훌륭한 해외로 터전을 옮기고 있는 것. 업계에서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해외 이전이 “사실상 국부 유출이나 다름없다”며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싱가포르 BK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업비트, 코인원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엑소더스(Exodus)'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국내 1·2위 거래소, 나란히 싱가포르로

지난 12일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은 싱가포르기업 BK컨소시엄에 매각됐다. BK컨소시엄은 싱가포르 BK메디컬그룹과 가상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 플랫폼을 운영하는 김병건 대표가 이끌고 있다. 영국과 태국, 일본 등에 법인을 설립하던 빗썸은 향후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효과’로 빗썸은 14일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랭킹 1위를 탈환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빗썸은 15일 오전까지도 24시간 거래량 기준 거래소 랭킹에서 1위에 올랐다. 바이낸스, 오케이엑스, 후오비 등 중국계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득세에 밀려 약 3개월만의 1위 탈환이다. .

빗썸과 국내 1,2위를 다투던 업비트 역시 싱가포르로 영역을 확장한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지난 2월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하고 김국현 전 카카오 인도네시아 대표를 법인 대표로 선임했다.

코인원은 이미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코인원은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설립한 ‘콩니원 인도네시아’의 베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마치고 거래소를 정식 론칭했다. 코인원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스위스·싱가포르 앞서나가는데…한국 여전히 ‘제자리걸음’

잘 나가던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가상화폐 인프라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올 초 실시한 대표 규제인 거래실명제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컸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거래실명제가 일부 대형 거래소 4곳에만 한정적으로 운영된 데다 거래실명제를 지키면서 거래량이 급감해 오히려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는 것.

정부는 규제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산업육성방안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 관련업계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달부터 ‘암호화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업종에서 제외시켰다. 사실상 성장의 싹을 자른 셈이다.

앞서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거래소 역할이 크다”면서도 “회사 이름이나 정관에 블록체인이란 표현이 있으면 해외 송금조차 어렵다”며 열악한 국내 인프라 여건을 토로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룸싸롱이나 카지노 같은 거래소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고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사이 스위스와 싱가포르는 블록체인·가상화폐 강국으로 떠올랐다. 스위스는 주크 주(州)를 크립토밸리(CryptoValley)로 천명하고 가상화폐 업계의 실리콘밸리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ICO는 물론 규제에 막혀 날개를 펼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주크 주에 터전을 잡았다.

싱가포르 역시 규제가 심한 중국과 한국 등 인근 국가들의 진출을 적극 수용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 중이다. 일찍이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했던 이들 국가들은 이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라는 미래 먹거리도 장악해 나가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상화폐 강국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관련 법안이나 규제 방안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오히려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는 것은 해외 인프라가 더 빨리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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