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A 씨가 오디션 봤던 작품에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A 씨가 원했던 배역에 스타의 가족이 들어간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가 되길 원해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일. 하지만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어릴 때 아이돌 그룹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연기를 하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때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하나 싶어요. 유명 아이돌 그룹 출신도 아니고, 스타 가족도 없는 저 같은 연기자가 작품에서 기회를 얻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연예인이 청소년들의 희망 직종 1순위가 된 건 이미 오래 전 일. 8월 기준 전국에 등록된 대중문화예술기획업체는 무려 2525개, 각종 오디션 참가자와 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및 졸업생 수를 합산하면 연예계 지망생은 100만 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데뷔의 기회를 잡는 건 1%도 채 되지 않는 상황. 스타 가족을 보는 배우 지망생들의 눈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돌 그룹은 차라리 나아요. 그 친구들은 어쨌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데뷔를 한 거고, 연습생 시절부터 연기 교육도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스타 가족은 아니잖아요. 그냥 ‘우리 아빠가 누구다’, ‘엄마가 누구다’ 이 이유 만으로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순식간에 올라가는 거예요.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밖에요.”

또 다른 연기자 B 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직업은 배우이지만, 오히려 연기를 아르바이트처럼 하고 수익은 연기학원에서 얻는다는 B 씨. 학원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내가 더 연기 잘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 왜 안 해봤겠어요. ‘왜 저 사람이 캐스팅 됐지?’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알고 보면 (스타의 가족 같은) 연줄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같이 하는데, 학원 다니는 애들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정말 타고난 아이들, 죽도록 연습하는 성실한 아이들이 많은데, 과연 이 가운데 몇 명이나 제대로 연기해 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거든요.”

실제 취재차 만난 여러 관계자들은 스타의 가족이란 이유로 더 쉽게 기회를 잡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케이블 및 온라인 시장까지 커지면서 프로그램은 더 많아지고, 그 사이에서 대중에게 각인되고 살아남으려면 이미 유명한 스타의 이름을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스타 가족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내 딸의 남자들2', '둥지탈출2', '식구일지' 포스터.(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과거 한 스타의 가족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한 적 있다는 관계자는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출연을 기정 사실화한 이들이 있었다”면서 “이 프로그램에 가족을 출연시키면, 다음 번에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그 스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캐스팅 요청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 영화까지 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과 제작비가 들어간다. 때문에 프로그램의 흥행을 담보하는 스타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출연시킬 정도로 큰 입김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디션 참가자들 간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건 힘든 일이다.

배우와 가수 등을 여럿 제작한 한 매니지먼트 종사자는 “그럼에도 출신 성분보다는 스타가 되려는 자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스타와 혈연 관계에 있다는 게 유리하지 않다고는 말 못 해요. 당연히 유리하죠. 일단 누구누구 아들, 조카 뭐 이런 수식어를 달고 나오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 더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유리한 단계는 ‘시작’뿐이에요. 결국 자기가 잘하지 못 하고, 제대로 역량을 보여주지 못 한다면 도태되게 마련이죠. 무턱대고 스타의 이름값만 보고 캐스팅하는 게 작품에 결코 좋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진=E채널, 스카이티브이, tvN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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