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그렇다고 금감원이 아무 일도 안 할 수는 없다”

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은 최근 모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금융회사의 잘못된 업무행태에 대해 금감원의 감독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열거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금감원이 만든 ‘가이드라인’이 실제로는 여러 부분에서 무용지물이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러자 윤 원장이 대화 끝에 이 말을 힘주어 말했다는 것이 그들이 전언이다. ‘설사 그렇게 무용지물이라도 금감원이 해야 될 일’이라는 뜻이다.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은 금융사의 어떤 업무가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발생 우려가 있을 때 금융소비자의 보호를 위해 금감원이 설정한 울타리다. 금융회사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더라도 금감원은 예방적 차원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둔다. 일종의 경고 기능도 있다.

금감원 가이드라인은 발표 당시 요란하게 언론에 등장하지만 실효성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 강제가 필요한 부분이 법률 제정이 뒤따라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이 법적 강제성이 없는 단순 행정지도에 불과해 금융회사도 지키지 않으면 금감원도 별다른 제재가 있을 수 없다. 이렇듯 자세히 보면 금감원의 감독 사항 중 상당부분이 법률제정이 따라줘야 하거나 금융위의 재가가 있어야 강제력이 생기는 것들이다. 

금감원이 이런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 비단 금융소비자의 금융생활에 관계가 깊은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난 17일 금감원이 발표한 금융사의 내부통제 방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증권 배당사고로 불거진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방안은 반드시 도입돼야할 제도이지만, 핵심사항이 모두 국회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고 금융위의 권한과 충돌되는 부분도 곳곳에 나타나 있다. 금융사의 내부통제 필요성에도 금감원이 혁신방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실상 많지 않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이 일로 금융위와 갈등설에 휘말리고 괜한 일을 한 것처럼 비판받았다.

금감원은 정부조직으로 볼 때 기재부·금융위·감사원 사이에서 기를 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국회에서 힘세기로 유명한 정무위의 국정감사 대상기관이기도 하다. 이 말은 금감원이 내놓은 감독정책의 실효성을 따질 때 국회의 입법 해태는 무엇인지, 금융위가 승인하지 않는 정책은 어떤 것인지 같이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렇다고 “금감원이 아무 일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입법이 뒤따라야 하고 금융위의 재가가 없으면 실효성이 의심되는 감독정책이라도 금감원이 가이드라인이나 내부통제 혁신방안과 같은 감독정책을 만드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금감원의 감독 정책 제안으로 어느 지점에 입법이 필요하고 금융위와의 충돌 지점도 명확하게 부각될 수 있다면 기자는 그것 자체로 꼭 필요한 일로 보인다. 금감원이 이래야 국회도 정부도 무엇이 쟁점인지 더 정확히 알 테니 말이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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