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일부 강성노조 둔 기업 여전히 '특혜 채용' 항목 존재
'고용 기득권' 이기주의에 설 자리 잃은 청년들 부모님 탓만
"국정조사로도 부족..청년 살릴 해결책 내놔야"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기회는 공평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무색하다. 청년실업률이 역대급으로 치솟은 가운데 공공기관 고용세습 논란이 기댈 데 없는 쳥년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을 뒤로 하고 '적폐청산'을 기조로 출범했기에 청년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의혹이 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야당은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묻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비합법적인 요구를 일삼는 일부 노동권과 고위 관료 등 이른바 '고용 기득권'의 부패고리가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역대급으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 고용세습은 오갈 데 없는 쳥년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서울교통공사로 시작된 '고용세습' 논란…여·야, 국정조사 두고 대치

서울교통공사 특혜 채용으로 시작된 '고용세습 의혹'이 한국가스공사와 인천공항공사까지 번지면서 여·야가 국정조사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강력 요구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침소봉대', '진실 없는 의혹'이라며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면서도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감이 며칠 남았으니 야당이 충분히 더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정말 필요하다면 우리도 응할 생각"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감사원 감사를 진행한 뒤 국정감사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청년들의 분노가 만만치 않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반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핑계로 이루어진 채용비리와 고용세습에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며 민주당에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야당은 이번 고용세습 의혹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른 '권력형 채용비리 게이트'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여당 측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자 큰 방향성이며 가치"라며 "만약 채용 비리가 발각되면 일벌백계할 것이며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계속 가지고 가야할 방향"이라고 밝혔다. 

야3당 의원들이 22일 오전 국회 의안과에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발단?…제 식구 챙기기 바쁜 '고용 기득권'이 더 문제

일부 정치권에선 고용세습이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말고도 '제 식구 챙기기'에 바쁜 일부 강성 노조와 고위 인사의 부정한 청탁이 채용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 

강성노조를 두고 있는 일부 조선, 자동차 기업들은 임금 및 단체협약 규정에 '직계 가족 채용' 조항이 불과 얼마전까지 존재했거나 현재까지 존재하는 곳도 있다. 

조선업계에선 대우조선해양이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직원 자녀 특혜 조항이 존재했지만, 지난해 임단협에서 '신규 채용 시 종업원 자녀를 우선채용한다'는 항목을 삭제했다. 

자동차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한국지엠의 노조 복지에는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또는 재직중 업무상 사망하거나 재해를 입은 조합원 자녀 및 배우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 

업계에선 고용세습 조항과 관련해 부담스러운 것은 맞지만, 노조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고용 특혜 조항은 빼야하는 게 당연하고 회사 내부적으로도 부담스러운 항목"이라며 "하지만 노조 측의 목소리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회사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단협이 길어지면 회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때문에 노조 측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단협 과정에서 해당 조항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서 "노사가 합의된 부분이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할 순 없지만, 고용세습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남아있는 조항"이라고 말했다. 

고용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에 애꿎은 청년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갈 곳 잃은 취준생 "부모님을 탓하게 되네요…"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3.6%로 전년동월대비 0.3%p 상승했으며 15~29세 청년 실업률은 같은 기간 0.4%p 하락한 8.8%를 기록했다. 아예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도 늘었다. 지난달 구직단념자는 55만6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7만3000명 증가했다. 2013년 이후 가장 큰 수치다.

그래서 흔히 취업을 '바늘구멍 뚫기'라고 말한다. 한 자리를 두고 많게는 수 천명과 경쟁해야하는 청년들은 학점, 대외활동, 제2외국어, 어학연수 등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년이 보장된 공공기관 취업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게 '공공기관 고용세습 의혹'은 더없이 절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30대 취업 준비생 A씨는 '고용세습'이란 단어가 나오자 크게 분노했다. A씨는 "일반적으로 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을 채우기 위해 숨쉴 틈도 없이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고용세습'은 절망감으로 다가온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어서 그는 "이번 기회에 정부에서 강성노조, 고위인사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책이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공기관 취업한 B씨는 함께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들로부터 다소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최근 고용세습이 이슈화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힘 있는 부모님을 만났더라면…'이라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취업하는 비율이 단 5%라 해도 취업 준비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사용자측인 경영계는 고용세습 조항과 관련해 부담스러운 것은 맞지만, 노조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연합뉴스

◆ 경제단체 "고용세습 반드시 척결돼야"...기업 "노조, 현 경제상황에 맞는 주장해야…"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고용세습'에 대해 "취업·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악습"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특수성이 채용특혜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공공기관의 장들은 임기 동안 내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조와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신의 인사평가를 고려해 노조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고용세습'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어서 이 관계자는 "고용세습을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청년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반드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그는 "현재 정치권에서 여러 이야기가 많은데 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납득할 만한 해결 방안과 개선책이 나와야 하며 '고용세습'은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노조를 두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고용세습을 하는 기업에도 문제가 있지만, 노조 역시 경제가 어렵고, 실업률이 높은 현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며 "노사가 모두 건강하게 상생할 수 있도록 회사와 노조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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