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인정기자, 박대웅 기자]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의 법인 분할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장을 제출했다. 산은은 본격적인 소송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31일 “한국GM을 상대로 한 주주총회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지난 26일 법원에 항고장을 냈다”며 “항고는 ‘주주총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으로 가처분 신청 취지가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은행은 한국GM의 법인 분할 움직임에 반발해 지난 9월 6일 인천지방법원에 주주총회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산업은행은 주총 결의에 대해 본안 소송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지만, 한국GM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불복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지난 17일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또 “이미 주주총회가 개최된 만큼 개최금지를 다투는 가처분은 실익이 없다”고도 밝혔다. 

산은은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이유를 분석해 항고의 내용을 ‘주총의 개최금지’에서 주총의 절차적 무효를 다투는 '추총 효력정지 가처분'으로 변경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산은관계자는 “가처분 재판과 별도로 곧 주주총회 무효를 다투는 본격적인 소송에도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은 향후 가처분과 주총 무효소송에서 지엠의 법인분할 결정이 주총결의 ‘특별사항’이라는 점을 부각할 전망이다. 종래 한국지엠은 법인분할 결정이 산업은행의 비토권 행사를 할 수 없는 ‘일반결의 사항’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지엠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은 없다."

카허 카젬 한국GM사장은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10년 간 한국GM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그는 "산업은행과 맺은 기본 계약엔 10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더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면서 "여러 차례 한국에 남겠다고 했으며 미화 64억 달러를 투자해 한국GM의 생산시설을 업그레이드 했고, GM의 글로벌 신제품 2개 차종을 한국GM에 배정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혹 속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생산법인과 연구개발법인 분리에 대해 카젬 사장은 "한국GM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서 "연구개발법인 설립으로 경영집중도와 운영효율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GM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건 GM이 부여하는 더 많은 연구개발 업무를 유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연구개발법인의 입지는 강화될 것"이라며 "매우 긍정적인 절차로 한국GM이 (다른 GM 내 자회사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카젬 사장의 말을 종합하면 GM은 한국GM을 정리할 계획이 없으며 연구법인과 생산법인의 분리는 한국GM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는 긍정적인 조치다. 하지만 "철수는 없다"고 선긋기에 나선 카젬 사장의 말과 달리 한국GM 철수 우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GM 본사가 지난 4~5년간 한국GM에서 벌인 일련의 행보가 '시기의 문제일 뿐 GM은 한국을 떠난다'는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GM은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한국에 입성했다. 그로부터 16년, 한국GM은 철수설에 시달리고 있다. GM은 한국을 떠날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GM의 속내를 알아야 철수설의 진위도 가릴 수 있다. 그동안 한국GM서 있었던 일들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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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부실, 핵심 원인은

한국GM이 시작부터 부실했던 건 아니다. 연도별 한국GM의 회계자료를 보면 2002년 GM의 대우차 인수 후 2003~2005년에는 손실을 기록했지만, 2006~2007년 3356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회생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정리해고자 복직과 2교대 전환으로 생산량도 2003년 40만678대에서 2007년 94만2805대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시기 한국GM의 부실 원인으로 꼽히는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 ▲이전가격(Trancsfer Price) 의혹 ▲막대한 본사 차입금과 고금리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회생에 성공한 직후인 2007년부터 한국GM은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지출한다. 2006년 말 한국GM은 GM 본사와 CSA(Cost Share Agreement·비용분담협정)를 체결한다. 2007년부터 적용된 CSA로 한국GM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껑충 뛰어 오른다. 2003~2006년까지 4년 간 평균 2700억 원 수준이던 것이 2007~2016년까지 10년 간 연평균 6000억 원 규모로 두 배 이상 급증한다. 10년 간 6조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도 한국GM은 라이센스 하나 갖지 못했다. 불공정 협정인 셈이다. 이후 한국GM의 영업이익은 대폭 줄었다.

이전가격 의혹도 한국GM 부실의 한 축이다. 이전가격은 다국적기업이 해외 자회사와 원재료 또는 제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가격으로 GM은 자신들의 지배력 아래에 있는 한국GM과 특수관계를 활용해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면서 가격을 조작해 세금을 적게 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국세청도 한국GM이 이전가격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13년 국세청은 한국GM을 상대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였고, 2014년 273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구체적인 추징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국세청은 국내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판매법인이나 남미에 있는 특수관계사로부터 받은 금액이 낮다고 판단했다. 한국GM 역시 "의도적으로 영업이익을 낮게 계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본사 차입금과 고금리 역시 한국GM의 부실을 부채질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GM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그 여파로 한국GM은 2009년 4월부터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처한다. GM은 이명박 정부에 1조 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고, 2009년 9월에는 산업은행에 유상증자 및 신차개발 자금 지원을 제안했으나 이 역시 거부 당했다. 결국 GM은 2009년 10월 4912억 원의 현금을 투입해 단독으로 유상증자를 했다. 이 결과 산업은행의 지분율은 28%에서 17%로 줄어 주요 사안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비토(veto)권을 상실했다.  

산업은행은 반발했다. 2010년 5월 만기도래 대출금 일부 회수 등으로 압박했고, GM이 갚아야 할 우선주를 GM대우가 벌어서 갚도록하는 합의서를 강제했다. GM은 2013년부터 5년간 매년 3000~4000억 원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은 GM대우가 상환하도록 명시해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유도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GM의 되치기에 당했다. GM은 2012년 말과 2013년 초 두 차례에 걸쳐 한국GM에 이자율 5.3%로 1조7000억 원의 현금을 빌려주고 이 돈으로 산업은행의 우선주를 상환하도록 했다. 이 결과 한국GM은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이자 비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2013년 말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으로 생산물량이 줄면서 한국GM의 재무구조는 더 나빠졌다. 결국 한국GM은 2015~2016년 4차례에 걸쳐 GM 본사로부터 7000억 원을 추가 차입했고, 이자 비용은 더 늘어나게 됐다. 이렇게 한국GM의 차입금은 5년 만에 1조7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불어났다. 

이 밖에도 이해할 수 없는 법인세 회계도 한국GM의 발목을 잡았다. 2013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최상위 지배자의 업무지원 비용' 항목으로 감사보고서는 '업무지원에 대한 대금 청구는 상호 사전 합의가 없었던 바 지급 의무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3년부터 GM 본사는 재무와 자금, 회계 등 포괄적인 업무지원에 대한 비용을 한국GM에 청구한다. 통상 모기업 차원에서 자회사에 재무와 자금, 회계와 관련한 통일적 기준을 적용해 운용하는 것과 다른 특이한 행보다. 결국 2014년부터 한국GM은 포괄적인 업무지원 비용을 GM 본사에 납부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낸 돈은 무려 13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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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투자·신차 배치하겠다는 GM, 믿어도 될까

GM은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앞으로 5년간 27억8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한편 SUV와 CUV 1종씩 모두 2종의 신규 차종을 한국GM에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27억 달러의 본사 차입금 전액을 출자 전환해 자본을 재구성하고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에 필요한 신규 투자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럴싸한 계획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한국GM 노사 간 임단협에서 열린 경영설명회에서 GM이 제시한 28억 달러 투자 세부 내역을 보면 GM은 5년 간 27억 81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이 돈은 ▲신규제품 ▲현제품 프로그램 ▲공장 및 장비 업그레이드 크게 3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투자금 배분을 보면 첫 3년(2018~2020년) 동안에 매년 3~4억 달러의 투자에 그치며 4년차인 2021년에 6억 달러, 5년차인 2022년에 10억 달러가 투입된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3~4년 뒤에나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진다. 다시 말해 첫 3년 동안 상황을 지켜본 뒤 집중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으로 이 기간 동안 우리 정부를 상대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며 재협상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종의 신규 제품 프로그램 배정도 GM의 저의를 의심케 한다. GM은 인천 부평공장에 SUV 1종을 배정한다. 대상은 차세대 트랙스(9BUX)다. 해당 차량은 2016년 임단협에서 부평공장 생산을 확약한 바 있다. 신차 배정이라고 보기에 무리라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경남 창원공장에 배정한 1종의 CUV도 논란이다. 해당 차량은 현재 프로그램 킥-오프(Program Kick-Off) 단계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승인을 얻지 못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상상 속의 차'인 셈이다. 

사실상 신차 프로그램은 CUV 1종 뿐인 상황에서 GM은 우리 돈 3조 원에 달하는 28억 달러를 신규차종 개발비용으로 책정했다. 신차 4~5대를 개발하고 양산할 수 있다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다. 신차 투자비용을 부풀려 산업은행(정부)의 지원 자금 액수를 늘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해당 차종은 모두 48개월 뒤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평의 SUV는 2020년, 창원의 CUV는 2022년 출시다. 공교롭게도 2020년에는 총선이, 2022년에는 차기 대선이 열린다. GM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신차 출시를 정부 압박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GM의 신차 배정 약속은 지난 5~6년 동안 군산공장에 차세대 크루즈 신차 배정을 두고 불거진 잡음을 보면 공수표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12년 12월 GM은 일방적으로 군산공장에서 차세대 크루즈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2013년 2월 팀 리 해외사업본부 사장은 군산공장에서 차세대 크루주 대신 차세대 캡티바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4년 8월 임단협에서 GM은 2017년 1분기부터 차세대 캡티바를 군산공장에서 생산하겠다고 명시했다. 2017년 1월 비정규직 1000명 해고 등 진통 끝에 군산공장서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개시됐다. 그러나 이미 멕시코-아르헨티나 현지 생산으로 북·남미 수출시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가격책정 실패로 차세대 캡티바는 내수 판매로 내려 앉았다. 결국 군산공장은 2월 차세대 크루즈 생산 개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GM, 결국 '셀(Sell) 코리아'?

기업의 생리는 단연 이익추구다. 글로벌 기업인 GM 역시 마찬가지다. GM은 글로벌 전략에 따라 한국GM을 '경차-소형차 특화 개발·생산 기지'로 삼았다. 수익 확대 가능성이 높은 중대형 세단과 SUV, 픽업트럭 등은 한국이 아닌 미국GM에서 개발·생산한다. 한국GM이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단과 SUV, 픽업트럭 등 차종을 다변화해야 하지만 이는 GM의 글로벌 전략과 배치된다. GM이 한국GM에 고가 차종 개발·생산 등 차종 다변화를 허용하지 않는한 한국GM은 연간 50만대 규모의 경차·소형차 생산에 머물러야 한다. 

현재 부평과 창원공장의 시설규모는 연산 70만 대다. 지난해 한국GM이 52만 대의 차량을 생산한 점을 감안할 때 시설과잉이다. GM경영진의 편에서 본다면 한국GM은 소형차 특화 기업으로 수익은 커녕 적자인 청산 대상이다. 여기에 한국GM을 청산하면 얻을 이득이 유지할 때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GM은 4억 달러라는 헐값으로 대우차를 인수했다. 그로부터 16년 GM은 남는 장사를 했다. 단적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 부평구청역과 인천지하철 부평역 그리고 대단지 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부평공장 부지의 시세는 10조 원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0조 원이면 한국GM의 모든 부채를 갚고도 남는다. GM 입장에서는 한국GM을 청산해도 그만, 한국 국민의 혈세인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유지해도 남는 장사다. 꽃놀이 패를 쥐고 흔들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양인정, 박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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