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성노 기자] '황제 병보석' 논란 이후 첫 법정출석은 험난하기만 했다. 횡령, 배임 등으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두 번째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 참석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는 법원의 병보석 취소 결정을 촉구했고, 이 전 회장 변호인은 언론에 날선 공격을 펼쳤다. 태광그룹 측은 취재진과 포토라인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2차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출석해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오영준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11시20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 대한 두 번째 파기환송심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병보석 기간에 음주와 흡연을 즐긴 이 전 회장이 논란 이후 첫 재판에 나선다는 점에서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3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이 오전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이 회장을 기다렸다. 태광그룹 관계자 역시 재판 시작전부터 법원을 찾아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이 전 회장이 과거처럼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나타날지, 재판부가 조세 포탈 혐의 등에 대한 심리 외에 보석 유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등에 이목이 쏠리는 재판이었다. 

◆ 시민단체 병보석 취소 촉구·휠체어 버리고 취재진 따돌린 이호진

공판기일이 열리기 약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 30분. 서울고등법원 정문에는 이 전 회장의 황제보석 규탄 및 법원의 병보석 취소 결정을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 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단체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는 "이 전 회장은 회삿돈 1400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3년6개월 징역형을 받고 구속됐지만, 63여일 남짓 수감되었을 뿐 '간암 3기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및 보석으로 풀려나 7년 8개월째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등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이 전 회장은 병원과 거주지를 벗어나 곳곳에서 목격됐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법원은 검찰의 보석 취소 검토 요청을 받아들이고, 병보석 제한 지역을 이탈해 황제 경영을 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의 보석을 취소하고 즉각 구속해야 한다"며 "법원은 권력과 돈의 힘으로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짓밟는 이호진을 반드시 일벌백계하고 응당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전 11시. 공판기일 20분전. 서울고등법원 6번 법정출입구에 몰려있던 취재진들의 탄식 소리가 크게 들렸다. 법원 관계자가 "이 전 회장은 10시 30분에 걸어서 법정으로 갔다"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일찌감치 법원을 찾아 취재진의 눈을 따돌리고 법정 안으로 향한 것. 이 전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오전 일찍부터 추위와 싸우고 있었던 취재진에는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시민단체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가 이호진 전 회장의 병보석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성노 기자

◆ "병보석 문제없고, 기사 베껴 쓰지말라"며 언론 자극한 변호인
 
11시20분. 이 전 회장에 대한 재파기환송심 1차 공판이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변호인과 함께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급차, 휠체어를 끌고 법정을 찾았던 과거와 달리 건강한 모습이었다. 재판부의 인적사항 질문에도 성심껏 답했다. 

이날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재벌이라는 신분 때문에 특혜를 받는 게 아니라 정당한 법 집행의 결과이며 불구속 재판 원칙이 실현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난하거나 한 분들이 보석이 안 될 경우 이런 부분을 시정하고 개선해 불구속 재판이 되도록 해야한다. 이것을 특혜라고 해서는 안된다"며 "과거 법원이 보석을 허가한 건 건강상태와 공판 진행 경과, 증거 인멸 및 도주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 전 회장은 오랫동안 이어진 재판에 지쳤지만 성실히 재판을 받고 있어 도주 우려는 없다"며 이 전 회장의 병보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변호인은 언론의 '병보석 특혜' 보도에 대해 "배후세력이 있지 않나 의심이 든다"면서 "언론은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며 "언론이 의도를 가지고 편향되게 보도하거나 의도 없이 남들이 쓴 기사를 베껴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 변호인의 예상 밖의 발언에 순간 법정을 찾은 취재진은 일제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과 검찰 측 제출 자료와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해 내년 1월 16일까지 보석 취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포토라인이 무너지며 태광 측과 취재진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이성노 기자

◆ 포토라인 무너지며 태광·취재진 몸싸움으로 번져   

법정에서 언론을 자극한 이 전 회장 측. 결국 재판이 끝나고 터질 것이 터졌다. 

이 전 회장은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와 취재진과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배후세력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친 이 전 회장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포토라인이 무너지면서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전 회장을 에스코트하는 태광 측과 취재진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난 것. 태광 측 직원이 한 카메라 기자의 멱살을 잡는 다소 과격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이 떠난 뒤 취재진은 언론을 저격한 변호인에 몰렸다. "배후세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변호인은 "추측이다"고 짧게 말한 뒤 이후 쏟아진 질문 세례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떠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전 회장의 '황제 병보석' 논란 이후 첫 재판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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