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골라인] 한국축구가 아시아 진짜 1위가 아닌 이유
[심재희의 골라인] 한국축구가 아시아 진짜 1위가 아닌 이유
  • 심재희 기자
  • 승인 2018.12.2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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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안컵 '고전 양상'
벤투호,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
파울로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도전한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도전한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반에서 1등을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성적표가 나오면 1등이 아니다. 그는 여러 가지 변명을 댄다.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왔다", "채점이 이상한 것 같다", "답을 좀 밀려 쓴 것 같다" 등등등. 그렇게 계속 습관처럼 '말로만 1등'을 주장하지만 그를 1등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1등이라고 믿는 그 학생은 실제로 상위권에 있으면서도 '1등 허풍' 때문에 평가절하 받기도 한다. 2019년 아시안컵(내년 1월 6일~2월 2일, 아랍에미리트)을 앞둔 한국 축구가 딱 그 모습이다.

2018년 마무리를 잘 지은 벤투호가 아시안컵 우승 사냥에 나선다. 59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 도전이다. 실제로 아시안컵 우승의 기억을 머릿속에 똑바로 새기고 있는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될까. 1950~1960년대 아시안컵의 위상이 낮았고, 이후 태극전사들은 번번이 미역국을 마셨으니 '아시안컵 우승'은 실제가 아닌 허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시안컵 성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진다. 한국은 1956년과 1960년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14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4번 한 건 무엇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A대표팀이 1990년 중반부터 아시안컵에 제대로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전제를 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대회 8강 성적에 그친 이후 2015년 호주대회 전까지 단 한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일본과 중동세에 밀려 아시안컵 우승을 계속 놓쳤다. 2015년에는 홈 팀 호주의 벽에 막혀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이쯤 되면 '반 1등을 한 적은 없다'고 봐야 옳다. 반 1등을 못했으니 전교 1등을 겨룰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국은 그동안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하면서 대륙 챔피언들이 승부를 벌이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권을 쥐지 못했다. 유럽과 남미의 강팀들과 싸울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넘겨주고 말았다.

◆ 한국의 아시안컵 역대 성적
- 1956년 홍콩대회 우승
- 1960년 한국대회 우승
- 1964년 이스라엘대회 3위
- 1968년 이란대회 본선진출 실패
- 1972년 태국대회 준우승
- 1976년 이란대회 본선진출 실패
- 1980년 쿠웨이트대회 준우승
- 1984년 싱가포르대회 조별리그 탈락

- 1988년 카타르대회 준우승
- 1992년 일본대회 본선진출 실패
- 1996년 아랍에미리트대회 8강 진출
- 2000년 레바논대회 3위
- 2004년 중국대회 8강 진출
- 2007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대회 3위
- 2011년 카타르대회 3위
- 2015년 호주대회 준우승
- 2019년 아랍에미리트대회 ???

아시안컵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항상 스스로 1등을 자부했지만 전력은 최강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이름값에 비해 팀 조직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상대에 대한 대비 부족으로 의외의 복병에게 덜미를 잡혔다. 유럽에서 뛰는 스타들을 호출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고비를 넘지 못해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다. 냉정하게 되돌아 보면, 말로는 아시아 1등이었지만 실제 아시아 1등은 아니었던 셈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후 무패행진(3승 3무)을 달리고 있는 대표팀에 대한 2019년 아시안컵 우승의 기대가 크다. 벤투 감독의 패스게임 색깔을 잘 받아들여 팀이 전체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전성기에 접어든 손흥민을 비롯해 젊은 선수들이 부쩍 성장해 신구조화도 잘 이뤄져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역시 자만은 금물이다. 아시안컵 우승을 한 지 반 백년이 훌쩍 더 지났고, 이번 대회는 중동에서 열린다. 59년 만의 우승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결코 낮아 보이지 않는다.

몇 해 전 일본에 클럽월드컵 취재를 갔다가 일본 축구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이 세계적인 강팀들과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는 저력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실제로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태극전사들은 세계적인 강호들과 대결해 종종 선전을 펼쳤다. 강한 정신력과 유럽파들의 존재감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아시안컵에서 딱 막혀버렸다. 그 일본기자의 말에 뼈가 있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강팀들과 대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왜 고전하는가."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다. 최근 한국은 월드컵에서 선전하면서 경쟁력을 발휘했지만, 아시아 팀들과 대결에서는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달고 있지만, 아시아 1등 타이틀은 거머쥐지 못했다. 피지컬의 열세 등으로 강팀들과 승부에서 한계를 보였지만 아시아에서는 승승장구한 일본과 대조적이다. 과연, 벤투호는 첫 목표인 '아시아 1등'을 찍고 순항할 수 있을까. 우선, '자만'이라는 치명적인 내부의 적부터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