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팬'의 팬마스터 이상민, 보아, 유희열(왼쪽부터).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스타들이 누군가의 팬이 돼 환호하고 실수마저 무대의 일부가 된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신개념 서바이벌 프로그램 SBS '더 팬' 이야기다. 셀러브리티들이 나서서 자신이 먼저 알아본 예비 스타를 시청자들에게 추천한다는 포맷의 이 프로그램은 지난 해 11월 24일 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여러 경쟁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7주 연속 2049 타깃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 스타, 당신의 스타는 누구입니까

국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고전이라 평가되는 Mnet '슈퍼스타K'부터 MBC '위대한 탄생', SBS 'K팝 스타', Mnet '프로듀스 101', 최근 방송되고 있는 MBC '언더나인틴'까지. '슈퍼스타K' 시즌 1이 방송된 2009년 이후 약 10년 동안 시청자들은 수많은 비슷한 포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나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범람하며 방송가에는 '서바이벌 전성시대'가 왔다가, 또 열풍이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프로듀스 101', Mnet '쇼미더머니' 등이 서바이벌의 부흥기를 열었다가, 이젠 그마저도 잠잠해져 가고 있다는 시기였다. '더 팬'이 시작할 때만 해도 "아직도 새로운 서바이벌이 나오느냐"는 평가가 없지 않았다.

'더 팬'은 자신만의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서바이벌에 다소 냉소적이었던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과 다른 볼거리'가 그것이다. 이제까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보컬로서든 퍼포머로서든 혹은 제작자로서든 확실한 능력과 보는 눈, 듣는 귀를 가진 심사위원들이 아마추어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자의 특성이나 심사 기준, 방식 등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을 뿐 큰 틀은 같았다.

'더 팬'은 자칭 출연자의 '1호팬'을 자처하는 스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보여주지 못 했던 색다른 재미를 충족시켰다. 한채영, 타이거 JK-윤미래 부부, 사이먼 도미닉, 박소현, 서효림, 거미 등 여러 분야의 스타들은 '더 팬'에 출연해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혹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동료 뮤지션들을 소개했다. 출연하는 스타들이 가수에만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번엔 또 어떤 스타가 나올까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고, 팬 마스터들까지 "스타 분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더 팬'에 출연해 큰 인기 끌고 있는 임지민(위)과 비비.

■ 실력은 인기를 담보하지 않는다

1회에서 사이먼 도미닉은 과거 크러쉬, 자이언티, 로꼬, 그레이 등과 함께 비비드 크루로 활동했으나 아직까지 크루 가운데 유일하게 대중적 인지도를 얻지 못 한 엘로를 소개했다. 2013년 싱글 앨범 '블러'로 데뷔한 엘로는 아는 사람은 안다는 업계의 유명인사다. 유희열, 김이나는 무대에 등장한 엘로를 한 번에 알아보며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자신의 노래 '오사카'를 부른 엘로는 아쉽게도 방청객들의 마음을 충분히 얻지 못 했고, 결국 다음 라운드 진출이 좌절됐다. 팬 마스터들 가운데 유희열과 보아의 마음을 빼앗는 데도 실패했다.

비록 실수가 있긴 했으나 보컬과 랩핑을 넘나드는 가창력과 자신이 직접 만든 유려한 멜로디와 가사는 엘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때문에 이 장면은 실력이 반드시 인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엘로는 자기가 얼마나 천재적인지 스스로 모르는 것 같다"던 김이나의 말처럼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무대에서 그것을 강조해 표현할 수 있는 능력, "(팬이 되겠다는 버튼을) 눌러주세요"라고 거듭 요청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 음정이 나가도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여유로운 느낌 등 스타가 인기를 얻고 얻지 못 하는 데는 아주 미묘하고 세세한 이유들이 있다.

박진영이 'K팝 스타'에서 자주 강조했던 '공기 반 소리 반 보컬'에서 알 수 있듯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실력'을 가장 중심에 두고 출연자를 평가했다.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그렇게 돼 있다 보니 어떤 참가자는 "실력이 부족한데 심사위원의 개인 취향으로 너무 미는 것 같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고, 음악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대중에게 "공기 반 소리 반"은 그다지 무게감 없는 유행어처럼 쓰였다.

한 달에도 수 십 팀이 데뷔하는 가요계에서 실력은 결코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더 팬'은 이런 속성을 확실히 파악하고, 잔혹한 실력 평가를 프로그램에서 제거했다. 타이거 JK는 비비를 소개하면서 "고음이 막 올라가는 보컬은 아니"라면서도 "천재 같다"고 이야기했다. 유희열은 전혀 정석대로 돌아가지 않는 비비의 바이브레이션과 미묘하게 음정이 나가는 노래를 듣고 난 뒤 "내가 만약 비비의 앨범을 만든다면 오토튠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확한 발성과 음정, 탄탄한 퍼포먼스라는 기준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스타성을 '더 팬'은 잘 캐치하고 있는 셈이다.

■ 아마추어라도 괜찮아

애초에 심사위원들의 평가라는 항목이 없다 보니 '더 팬'에 출연할 수 있는 진입장벽 역시 한껏 낮아졌다. 한채영은 박용주를 '더 팬'에서 추천하면서 "많이들 아시겠지만 나는 음악적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한채영이 추천한 박용주는 당당히 200표 이상을 얻어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톱 5에까지 올라갔다.

음악을 만드는 이는 전문가지만 음악을 듣는 이들은 대부분 비전문가다. 아무리 비싼 장비로 훌륭한 사운드를 구현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1만 원짜리 저가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면 그런 풍성한 사운드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즉 전문가의 시선과 비전문가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힙합씬의 알아주는 실력자 사이먼 도미닉이 추천한 '뮤지션들의 뮤지션' 엘로가 떨어진 반면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방송인 박소현이 유튜브에서 한 번 봤을 뿐인 고등학생 소년이 톱5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에 있어 아마추어인 스타들의 시선은 비전문가가 대부분인 대중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용주, 미교, 임지민 등은 비전문가인 한채영, 서효림, 박소현의 추천으로 그렇게 또 다른 기회를 얻게 됐다.

'더 팬'의 스타 원석들은 12일 생애 처음으로 팬미팅을 진행하며 차세대 인기 스타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경연 투표와 바이럴 집계를 통해 팬을 모아 최종 우승을 겨루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 '더 팬'은 매 주 토요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된다.

사진=SBS 제공

정진영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