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일본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하 ‘우행록’)으로 약 9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2004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주인공 츠네오를 연기, 국내에서 ‘일본 영화 붐’을 일으켰던 사토시는 한국과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사토시는 ‘우행록’ 개봉 전에 한국 기자들과 만나 오랜만에 내한한 소감과 2009년 영화 ‘더 보트’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하정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오랜만에 새 영화로 한국을 찾았다.

“작품을 한국의 관객들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장점은 섬세한 심리묘사다. ‘우행록’이 그리고 있는 섬세한 묘사를 한국 관객들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 현지에서는 ‘우행록’이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 한 걸로 알고 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걸 한국에서 만회하고 싶다. (웃음) 한국 분들에게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 받았으면 좋겠다.”

-시나리오가 완성하기 전에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다면.

“‘우행록’ 출연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다. 케이 감독은 단편으로 유럽에서 상도 받고 했던 분이다. 이 분이 연출한 단편 작품을 봤는데 정말 훌륭하더라. 그걸 보고 케이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본 영화는 뜨겁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 분의 작품에서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가 ‘우행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게 되는데, ‘우행록’을 보다 보면 그런 인상이 얼마나 간단하게 무너지는가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점도 재미있다고 여겨졌다.”

-연기한 다나카라는 캐릭터는 대사보다 표정, 행동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편이었는데.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연기였다. 모든 걸 다 의미있게 전달하려고 하면 오히려 단순한 대사가 돼버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기억하는 모든 순간들이 다 의도를 가지고 남긴 순간들은 아니었을 것 아닌가. 이 점을 생각하면서 밸런스를 조절했다. 전에는 좋은 대사일수록 멋지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런 부분을 가급적 덜어내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최근 필모그래피에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들이 여럿 있다. 의도한 것인지.

“의도를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다만 어떤 것이든 표현하는 대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해서 그게 ‘이해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분노’라는 작품에서는 게이 연기를 했다. 게이를 비롯해 성적소수자의 세계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 가운데 게이가 있어서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대로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고 이해도 하지 못 했으면서 차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나도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성적소수자를) 꺼려했었는데, 점차 알게되면서 그들만이 가진 장점에 대해서도 많이 보게 되더라. 내 마음 속에서 새로 싹트는 부분도 있고.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분노’라는 작품을 하기 전에 게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언론 시사회에서 연기를 함께하고 싶은 한국 배우로 하정우를 꼽았는데.

“하정우는 해외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 첫 번째 사람이다. 실제 하정우를 ‘형’이라고 부른다. 형과 영화를 같이 한 게 벌써 10년 전이다. 10년 전에 내게는 없었던 얼굴을 하정우에게 보여주고 싶고, 형이 그 10년 사이에 어떤 배우로 변했는지도 보고 싶다. 정말 나는 하정우를 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제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고, ‘보트’ 같은 버디 무비를 다시 찍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번 내한 일정 때 만날 계획 없나.

“원래 같이 저녁을 하기로 했는데 형이 바쁘다고 해서 무산됐다.”

-청춘 스타에서 이젠 작품의 무게를 잡는 중견 배우가 됐다. 지난 연기 생활을 돌아본다면.

“딱히 틀린 건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은 실패했다’는 등의 주변 평가는 있었다. 그런 평가와 실패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딱히 후회하는 일은 없다. 20대 때만 해도 모든 것들이 자극적이었고 영화를 작업하는 일도 즐겁기만 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내가 얻은 것들, 좋은 평가에 집착하게 됐다. 지금 되돌아 보면 그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의외로 30대가 되고 보니 나한테는 여전히 아이 같은 구석이 남아 있더라. 지금은 ‘유치한 부분이 있으면 어때. 아이 같으면 어때’라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는 너무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하지 않고 주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나를 맡길 수 있게 됐다. 상당히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를 대하고 있다. 사실 요즘은 평생 어른이 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웃음)”

사진=풍경소리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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