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지난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젠더(생물학적 성에 대비되는 사회적인 성) 이슈'일 것이다. 종합 포털사이트 통합검색에서 국어사전 결과를 클릭한 검색어 1위가 '페미니스트' 일 정도로 젠더 논란은 한해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미국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폭로에서 발발한 미투(#MeToo, 나도 피해자) 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2019년에도 젠더 이슈는 뜨거울 전망이다. 이에 한국스포츠경제는 연예계 각 부문별로 젠더 이슈가 어떻게 다뤄지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계는 엔터테인먼트문화 중 젠더 전쟁이 가장 활발한 분야로 꼽힌다. 페미니즘적 성향을 띤 영화는 늘 화두에 오르고, '여혐(여성 혐오)', '남혐(남성 혐오)'으로 대표되는 성별갈등이 영화의 평점 테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젠더 갈등이 점점 심화되자 영화계는 스크린 성비 균형을 맞추는 등 서서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나름대로 어느 한 성(性 )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변화를 주고 있으나 영화계의 젠더 갈등은 쉽게 식지 않는 모양새다.

■ ‘아직 개봉 전인데’..뚜껑 열기도 전에 비난

젠더 갈등이 가장 심하게 두드러진 작품은 배우 정유미가 주연을 맡은 ‘82년생 김지영’이다. 영화는 국내에서 100만 부가 팔린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친정 엄마, 언니 등으로 빙의 된 증상을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성 김지영과 그녀를 둘러싼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 1982년생 김지영 씨의 인생을 통해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그렸다. 페미니즘적 성향이 짙다는 이유로 일부 남성들에게 무분별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영화 제작을 향한 화살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지난 해 9월 ‘82년생 김지영’의 영화 제작 소식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막아주세요” “정유미의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연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배우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남성은 정유미의 출연 자체를 반대한다며 “논란이 된 소설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한다. 남자 팬들을 다 안티 팬으로 만들 작정이냐. 출연 없던 걸로 해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평점 테러를 받고 있기도 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에 소개된 ‘82년생 김지영’의 평점은 1점으로 도배됐다. 평점 테러를 한 이들은 일부 사례를 과대 포장해 영화화로 만드는 게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 불을 더 지피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아직 뚜껑을 열기도 전인데 무분별한 평점 테러와 섣부른 판단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남성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극히 여성에게 치우친 영화일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한 영화 관계자는 “비단 ‘82년생 김지영’ 제작을 향한 비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남녀 간 서로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조덕제 반민정 사건, 왜 젠더갈등으로 번졌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으로 남은 조덕제 반민정 논란 역시 젠더 전쟁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조덕제는 지난 2015년 4월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 중 함께 연기한 반민정을 성추행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나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조덕제의 아내는 “대한민국 500만 페미니즘 플러스 갱년기 아줌마들의 공공의 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남편의 무죄를 주장했다.

조덕제는 “잘못된 세력들. 전에 없던 남혐, 여혐이라는 사회갈등 구조를 양산한 일부 여성단체들을 색출해 없애야 한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게 하지 않도록 힘을 모으기 위해 카페도 만들었다. 그 누구라도 억울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반민정은 조덕제를 명예 훼손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문제는 두 사람의 법적 공방이 젠더 갈등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닌 남성, 여성으로 편을 갈라 맹목적인 비난을 일삼는 이들이 논란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 “시들지 않는 꽃” 정우성의 발언이 논란된 이유

배우 정우성 역시 영화 ‘증인의 홍보 인터뷰 당시 의도치 않은 발언으로 혹자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우성은 같은 소속사인 염정아의 연기를 언급하며 “꽃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우성의 발언에 혹자는 차별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여성배우를 ‘꽃’으로 비유한 것은 잘못된 발언”이라며 “성차별적인 표현 및 젠더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추세다. 여성배우들이 과거 온전한 ‘배우’로서가 아니라 ‘꽃’으로만 비유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여성배우를 언급할 때 ‘꽃’에 비유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우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애정 어린 지적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드린 분이 불편하다면 그 표현은 지양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차별적 표현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성 차별과 갈등에 대한 남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영화인들 역시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젠더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인 만큼 작품 제작과 배우들의 발언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대중 역시 편견 없는 시선으로 영화계의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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