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천우희가 또 한 번 쉽지 않은 캐릭터에 도전했다. 영화 ‘우상’을 통해서다. 극 중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조선족 련화 역을 맡아 범상치 않은 파격적인 연기를 펼쳤다. ‘한공주’(2014년) 속 성폭력 피해 여고생, ‘곡성’(2016년) 속 마을 수호신 무명을 잇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천우희는 ‘우상’ 촬영 시기가 배우 고(故) 김주혁이 세상을 떠난 시기와 겹쳐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희는 “현장에 있을 때만큼은 늘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 ‘한공주’에 이어 이수진 감독과 재회했는데.

“이 영화에 처음 임할 때는 의욕이 넘쳤다. ‘한공주’ 때 감독님과 호흡이 잘 맞기도 했다. 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비슷했다. 이번에도 그런 설렘이 있었다. 게다가 한석규, 설경구 선배가 출연한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현장에서 두 분의 연기를 보기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았다. 물론 내심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련화 역을 연기하기 위해 눈썹을 직접 밀었다고 했는데.

“원래 눈썹을 한 번만 밀 예정이었는데 두 번을 밀었다. 4개월을 촬영하려다가 촬영 기간이 6~7개월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눈썹이 없는 상태로 집에 갇혀 있었다. 근데 감독님이 눈썹은 다 자라니까 걱정 말라고 말했다. 얄미워서 감독님도 눈썹을 밀라고 하니 정말 똑같이 눈썹을 밀고 촬영장에 나타났다. 깜짝 놀랐다. ‘너 허투루 연기하면 죽는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

-이수진 감독은 굉장히 집요하고 치밀한 연출자인데.

“나는 감독님의 집요함을 좋아한다. 집요한 성향의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해서 그런지 단련이 됐다. 나 역시 하면 할수록 지치는 편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하고 싶어서 발동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이수진 감독님과 작업이 힘들긴 하다.”

-‘한공주’ 에 이어 또 피해자 여성을 연기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부담감은 또 다르다. ‘한공주’는 아무래도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보니 조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반면 내가 이번에 연기한 련화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생존을 우선시하는 인물이다 보니 느낀 점은 달랐다. 련화라는 인물의 배경과 ‘한공주’와는 차별점이 많다.”

-연변 사투리 연기를 했다. 리얼하게 연기한 것은 좋으나 사투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 영화의 뉘앙스와 분위기에 따라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말에 단서가 있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 감독님과 연변 사투리 선생님이 엄청 고민하면서 만든 장면이다. 나는 사투리 연기를 하면서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꼈다.”

-극 중 구명회(한석규)가 발가락에 주사를 놓는 장면이 있다. 부상을 당한 장면이라고 했는데.

“컨테이너 신만 5일 넘게 찍었다. 하루 종일 10시간씩 눈에 청 테이프를 붙이고 있으니 나도 한계를 느꼈다. 공황장애 비슷한 걸 느끼기도 했는데 잘 버텼다. 이것만 끝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날 사고가 났다. 나는 뒷모습 어깨만 나오고 한석규 선배만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그날따라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발가락이 너무 아팠는데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걸 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컷’ 하자마자 한석규 선배가 깜짝 놀랐다. 내 발을 보니 피가 철철 나더라. 가짜 주사여야 했는데 진짜 주사기였던 거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일어난 게 속상했다. 바로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갔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우상’을 마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한공주’가 내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라면 ‘우상’은 한계를 맛 본 작품이다. 촬영 시기도 김주혁 선배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 겹쳤다.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느꼈다. 한동안 너무 힘들었다. 스스로가 별 것 아닌 배우라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감정을 콘트롤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 정도에 무너진다고?’라고 생각했다.”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극복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기도 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품 선택을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유튜브 방송으로 한 번 환기를 시키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뭘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괜찮아졌다.”

-주로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한다. 많은 감독들이 캐릭터에 적합한 인물로 자신을 선택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냥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내게 제안하시는 것 같다. 물론 내 취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와 반대되는 모습이 있으니 더 끌린다. ‘자, 네가 스스로 해결해 봐’라고 맡기는 분들도 있는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병헌 감독의 신작 JTBC ‘멜로가 체질’에 출연을 확정했는데.

“시나리오는 작년에 받았지만 심적으로 힘든 시기라 거절했었다. 그런데 올해 이병헌 감독님이 다시 또 내게 이 시나리오를 주셔서 감사했다. ‘써니’때 안면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계속 보지 못했다. 이번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돼 궁금하다. ‘멜로가 체질’은 세 여자의 이야기가 정확히 33%씩 분배돼 있다. 캐릭터마다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대중들께 신선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답게 연기하자는 생각이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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