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대한항공과 한국 항공업계 위한 45년 외길
말년 오너가 '갑질' 문제로 부침 겪어

[한스경제=강한빛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고(故) 조양호 회장은 45년 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위기와 성공 등 부침을 모두 경험하면서 국내 항공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말년에 가족의 잇단 '갑질 논란'에 시달렸고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표직에서 물러난 첫 총수가 되기도 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수송보국’ 일념으로 하늘 길 위해 노력한 45년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성장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항공업계 발전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몸소 익혔다. 1984년 정석기업 사장,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을 지내며 1992년엔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다. 이후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며 선친에 이어 그룹 경영을 이었다.

조 회장은 특히 대한항공 외에 한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특히 '항공업계의 유엔(UN)'으로 통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탰다.

그는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와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으며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로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을 역임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노력은 2019년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 조 회장 주도로 조직한 글로벌 항공사 동맹체 ‘스카이팀’은 현재 19개 회원사가 175개국 1150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대표적 글로벌 동맹체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대한탁구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이사 등을 역임하며 스포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킨 바 있다.

민간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몽골에서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

A380 항공기 조종석에 앉은 고 조양호 회장/사진=연합뉴스

◆역발상 "불황에 호황을 대비"…재계 "우리 사회 큰 손실"

조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대한항공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과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등 문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조 회장은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 대한항공에 처음 발을 들였다.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원가는 줄이고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여 불황에 호황을 대비하며 맞섰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 축소에 기여했다.

2001년 9·11 테러 사태로 항공산업이 위축됐을 때는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2003년에는 A380 초대형 차세대 항공기를, 2005년에는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를 연이어 투입했다.

한편 오너가의 ‘갑질’ 논란으로 말년 녹록지 않은 시간을 겪기도 했다. 2014년 12월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기 회항을 지시한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문제가 되며 조양호 회장은 해당 사태에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1999년부터 맡았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조 회장은 지난 3월 27일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의 결과로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 결과로 ‘주주 손에 밀려나는 첫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조 회장의 별세는 재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며 애도를 표했다.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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