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청률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KBS2 '개그콘서트' 한 장면.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개그계가 좀처럼 기를 펴지 못 하고 있다. '국민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렸던 KBS2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최근 5~6%대다. 잘나가던 때의 반토막 수준이다. '간디작살', '할리라예', '의리' 등 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화제성만큼은 담보했던 tvN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 역시 이렇다 할 화제 코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와 비교해 시청률도 1%p 이상 줄었다. 케이블 채널임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수치다.

이런 정통 코미디들의 약세 속에서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며 성장하는 분야가 있다. 이미 미국 등 해외 코미디계에선 주류로 굳어진 스탠드업 코미디다. 스탠드업으로 유명한 굵직한 스타들이 연이어 내한하고 있고, 국내 코미디언들도 브라운관을 넘어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 달 초 내한헀던 짐 개피건스.

■ 코미디, 언어의 장벽을 넘다

지난 1월 호주 출신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짐 게프리스가 내한했다.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공연은 "옆 사람과 몸을 부대끼면서 봤다"는 평이 쏟아질 정도로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다수 관객으로 포함돼 있었음을 감안해도 영어로 진행되는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관객들이 꽉 들어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약 7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열린 짐 개피건 쇼 역시 거의 객석을 꽉 채우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애드리브와 즉흥적인 쇼,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알아야만 제대로 웃음이 터지는 농담 등이 혼재돼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장르의 특성상 동시통역을 제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렸다는 건 그만큼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국내 대중의 니즈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같은 현상에는 유병재의 '블랙코미디'와 'B의 농담'도 기여를 했다는 시각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지난 해 공개된 '블랙코미디'와 'B의 농담'은 'SNL 코리아' 작가 출신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다. 그는 이 쇼에서 성혐오를 농담 소재로 사용하고 여성혐오적인 욕설을 여러 차례 노출해 논란을 빚었으나, 오히려 그 논란 덕인지 쇼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이후 국내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친숙해졌다.

'서서농담' 포스터.

■ 브라운관→공연장, 자리 옮긴 코미디

국내 코미디언들도 이런 시류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대희, 김준호, 김준현, 박나래 등 많은 인기 코미디언들을 거느린 JDB엔터테인먼트는 지난 해 서울 홍대 인근에 JDB스퀘어를 오픈했다.

이곳에서는 지난 해 10월부터 스탠드업 코미디가 중심이 된 오픈런 공연 '서서농담'을 주 1회 진행하고 있다. 3만 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음료까지 제공돼 데이트를 위해 찾은 젊은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 19금 공연이라 신분증 지참이 필수인데, 그만큼 TV에서 볼 수 없던 수위의 개그를 만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카페 겸 공연 대기실로 운영되는 공간은 박나래의 등신대가 서 있는 '나래바'로 꾸며져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코미디얼라이브' 포스터.

서울 강남에도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즐길 수 있는 펍 코미디 헤이븐이 있다. 코미디 헤이븐은 국내 유일의 스탠드업 전용 클럽으로 오는 6월 29일까지는 정재형, 김영희, 김민수, 이용주, 박철현, 한기명, 강석일 등이 출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쇼 '코미디얼라이브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중견 코미디언 최양락은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가 주가 된 '전유성의 쑈쑈쑈' 제작 발표회에서 "요즘 코미디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많은데, 내 눈에 후배들은 변함없이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미디 침체에 대해서는 "볼거리가 많아지면서 재미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높아졌다. 그 기대를 따라가는 과정이라 본다"고 분석했다.

역시 같은 자리에 참석한 김학래 역시 비슷한 생각을 드러내며 "시대가 달라지면 코미디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으로 억압받던 시대에는 '회장님 회장님', '네로 25시' 같은 콩트가 먹혔다. 지금은 그런 코미디를 해 봤자 재미가 없다"고 짚은 뒤 "지금 후배들은 간략한 세트에서 펼치는 입담, 스피디한 전개, 즉흥성을 가미한 공연 등에 재능이 있다. 그런 쪽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며 스탠드업 코미디의 미래를 밝게 점쳤다.

사진=KBS '개그콘서트',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JDB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미디얼라이브' 포스터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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