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한국영화 100년사, 피 땀 눈물로 만든 성장
[이슈+] 한국영화 100년사, 피 땀 눈물로 만든 성장
  • 양지원 기자
  • 승인 2019.04.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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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경제=양지원 기자] 한국영화가 탄생 100년을 맞았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은 1919년 10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로 한국영화 역사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100년의 세월 동안 한국영화는 현대사와 함께 숱한 굴곡 속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 ‘춘향전’으로 산업화 꿈틀..1960년대부터 부흥기

한국 최초 영화로 기록된 ‘의리적 구토’ 이후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나운규)이 성공을 거뒀다. 1934년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등 무성영화 제작이 활발히 이뤄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발성영화는 ‘춘향전’(1935)이다. 한국영화의 산업화가 시작될 조짐을 보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맞으며 영화 제작은 힘을 잃어갔다. 1941년 이병일의 ‘반도의 봄’은 일제를 옹호하는 친일영화로 불린다.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스틸.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스틸.

광복 이후 6.25전쟁 전까지는 혼란기였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 이규환의 ‘춘향전’이 흥행에 성공하며 부흥기에 접어들었다. 1956년 한형모의 ‘자유부인’은 당대 흥행작이자 한국영화의 파급력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같은 해 개봉한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은 한국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제(아시아영화제)에서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성장한 해로 불린다. 한국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명감독이 이 시기에 배출됐다.

충무로의 기인이라 불린 김기영의 ‘하녀’(1960), 한국사회 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유현목의 ‘오발탄’(1961), 신상옥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한국 사회를 풍자한 이봉래의 ‘삼등과장’(1961)이 주목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김기영의 ‘하녀’에 대해 “한국영화의 ‘시민 케인’(1941)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화가 다양해지면서 장르 역시 풍성해졌다. 서민의 삶을 담은 가족 드라마가 인기 장르가 됐다. 또 ‘연산군’(1962년·신상옥) 같은 사극 영화도 나왔다.

■ 암흑의 시대 1970-80년대..임권택 감독의 활약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스틸.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스틸.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로 불린다.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는 혹독한 검열 속 영화 제작이 제한됐다.

이 중에서도 주로 청춘의 고뇌를 담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최인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1974년·이장호), ‘바보들의 행진’(1975년·하길종) 등이 대표적이다. 또 술집 여종업원의 이야기를 그린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김호선)가 주목받았다.

1980년대에는 세태를 풍자한 날카로운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은 졸부 근성을 비판한 작품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진보적인 성향을 띤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미국을 선망하는 사회를 풍자한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1988년), 장선우의 ‘성공시대’(1988) 등이 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임권택 감독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임 감독은 ‘씨받이’(1986) ‘아다다’(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1988) 등을 선보이며 한국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한국영화를 알렸다.

■ 한국영화 상업화로 이끈 ‘쉬리’..밀레니엄 흥행신화

영화 '쉬리' 포스터.
영화 '쉬리' 포스터.

1990년대 한국영화는 상업적 토대의 발판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명세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를 시작으로 김의석의 ‘결혼이야기’(1992) 등 로맨스물이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이후 한국 영화는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산업의 내실을 강화한다. 김대중 정권은 과감한 영화산업 지원책을 내놓고 비슷한 시기 도입된 멀티플렉스는 극장 문화를 바꿨다. 한국 블록버스터의 출현을 알린 강제규의 ‘쉬리’(1998)는 개봉 당시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삼성영상사업단이란 대기업 자본이 투입된 작품이다.

‘밀레니엄 시대’로 불리는 2000년대는 한국영화산업의 부흥기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박찬욱) ‘실미도’(2003·강우석) ‘괴물’(2006·봉준호) 등 한국 블록버스터가 줄줄이 흥행했다. 또 임권택의 ‘춘향뎐’(2000)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취화선’(2002)은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는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창동의 ‘밀양’(2007)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시’(2010)는 각본상을 받았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에 진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며 제작자 및 배우들이 존경하는 영화인으로 꼽히고 있다.

■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영화 역사 알리기 나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스틸.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스틸.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너나 할 것 없이 영화기관들은 여러 행사를 마련했다.

올해로 4회를 맞은 런던 아시아영화제는 지난 3월부터 오는 9월까지 런던 현지에서 ‘K-시네마 100’을 연다. 고전부터 최신작까지 한국영화 대표작들을 극장이 아닌 영국 국립미술관 등 랜드마크에서 상영한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앞으로도 장르별로 다양한 한국영화를 영국 국립미술관, 국립 초상화 갤러리, 템즈 강 위 보트 등 여러 명소에서 상영해 영국인들이 한국영화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오석근 위원장)는 지난해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단’을 구성했다. 영화감독 이장호, 배우 장미희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지난해부터 주요 작품의 복원과 디지털화, 국내외 상영 행사, 한국 영화사 다큐멘터리 제작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 중 기념사업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영상자료원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새 영화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관광객 유치에 활용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영화 강국들을 벤치마킹 하는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매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시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일대를 월드 시네마 랜드마크로 조성할 방침이다.